삼성전자가 일본에 300억엔(약 3000억원)을 투자해 반도체 개발 거점을 새로 만든다. 삼성전자의 투자금 가운데 절반 가량을 일본 정부가 보조할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2년 만에 '셔틀외교'를 재개한데 따른 기업 차원에서의 첫 성과를 한국 최대 기업이 올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다. 한국경제신문은 지난 4일 "일본 정부가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한국 대기업의 반도체 관련 공장을 유치하는 깜짝 발표를 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삼성전자가 300억엔을 투자해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 반도체 개발 거점을 신설한다고 14일 보도했다. 2025년 가동을 목표로 최첨단 반도체 디바이스의 시제품 라인을 만들 계획이다. 일본이 강점을 가진 반도체 소재 및 장비 업체와 공동 연구로 생산기술을 개발하게 된다.
일본 정부의 보조금도 활용할 계획이다. 이 신문은 삼성전자가 일본 정부에 반도체 시설 건설에 대한 보조금을 신청했으며, 100억엔(1000억원)을 초과하는 수준을 지원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삼성전자는 답변을 피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반도체 생산시설을 자국 내에 신설하는 기업에 최대 절반까지 투자금을 보조한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대만 TSMC와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생산시설을 일본에 유치하면서 6170억엔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한일 반도체 협력은 지난 7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핵심 사안이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한국이 강점을 가진 반도체 제조와 일본이 경쟁력을 보유한 소재·부품·장비를 합쳐서 반도체 공급망을 강화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는 자국의 반도체 산업을 부활시키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1988년 세계 시장의 50.3%를 차지했던 일본 반도체 점유율이 2019년 10%까지 주저 앉았기 때문이다. 2030년 반도체 점유율이 0%가 될 것으로 예상되자 일본 정부는 자국내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파격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초에는 규슈 구마모토현에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인 TSMC 공장을 유치했다. 작년 8월에는 도요타, 소니, 기오시아홀딩스, 덴소 등 일본 대표 기업 8곳이 출자하는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를 설립했다. 일본 정부는 라피더스를 통해 2㎚(나노미터: 1㎚=10억분의 1m)급 최첨단 반도체를 양산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거점을 유치함에 따라 일본은 세계 1~2위 반도체 기업의 생산 시설을 모두 확보하게 됐다. 미국 시장 조사회사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TSMC와 삼성전자의 반도체 매출은 각각 758억달러(약 102조원)와 655억달러로 1~2위였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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