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추계 오차'에 민감한 기재부…'추경' 퇴로도 차단

입력 2023-05-14 15:54   수정 2023-05-14 16:13

“재정수지는 매월 등락을 반복하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지속해서 증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연간 적자를 판단하기엔 이른 시점입니다.”

“올해 경기 상저하고가 예상되기 때문에 세수 상황은 하반기에 훨씬 좋아질 것입니다. 지금 세수 추계 실패를 얘기하는 것은 너무 이릅니다.”

지난 11일 올 1분기 나라 살림 적자 규모가 담긴 ‘월간 재정동향 5월호’가 발표된 직후 기획재정부 관계자들이 잇따라 들려준 얘기다. 사흘 후인 14일에도 기재부는 ‘1분기 실적으로 연간 적자를 추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내용을 담은 설명자료를 배포했다. 경기 상저하고에 따라 세수 상황이 좋아지기 때문에 재정수지가 지금 추세처럼 악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월간 재정동향에 따르면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등 4대 보장성 기금을 차감해 정부의 실질적인 재정 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54조원 적자를 기록했다. 정부가 제시한 올해 연간 관리재정수지 적자 전망치(58조2000억원)에 육박한다. 연간 최대 적자를 냈던 지난해(117조원)의 절반에 달한다.

올 1분기 정부 총지출이 186조8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6조7000억원 감소했는데도 총수입(국세 및 세외수입 등)이 줄어들면서 관리재정수지가 악화한 것이다. 특히 올 1분기 국세 수입은 87조1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4조원 감소했다. 역대 최대 감소 폭이다. 작년보다 ‘덜 썼지만’, 세수가 훨씬 ‘덜 걷히면서’ 이를 상쇄한 것이다.

기재부는 5~6월 중 세수 상황이 정상화될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사진)을 비롯한 기재부 관계자들은 세수 상황을 묻는 질문에 항상 똑같은 답변을 되풀이하고 있다. 사석에서도 마찬가지다.


공직사회에서 모든 공무원이 일제히 똑같은 답변만 한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기재부가 그만큼 해당 현안에 대해 민감해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측하기 어려운 경제 상황에 대해 정책 담당자들에게서 일관된 답변이 나온다는 것은 사전 조율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기재부의 설명이 틀린 것은 아니다. 기재부에 따르면 실제로 지난해에도 부가가치세 등이 징수된 4월과 7월엔 당월 기준 흑자를 냈다. 지난해 3월 45.4조원이었던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4월 7.6조원의 흑자를 내면서 37.9조원으로 감소했다. 같은 해 6월에도 101.9조원이었던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7월 15.1조원의 흑자를 내면서 86.8조원까지 누적 적자가 줄었다.

기재부 관계자는 “재정수지는 세입과 세출 및 경제 상황의 영향을 받아 매월 등락해 월별로 지속 증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시점에서 연간 적자를 단순 추정하는 건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기재부 설명대로 올해 경기 상저하고가 현실화한다고 가정하면 어떨까.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공개한 올 하반기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1%다. 3개월 전 전망치(2.4%) 대비 하락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2.6%였다. 4월부터 연말까지 세수가 작년과 똑같이 걷힌다고 가정하면 올해 세수 예상액은 총 371조9000억원이다. 기재부가 올해 편성한 세입예산(400조5000억원)보다 28조6000억원가량 부족하다.

일각에선 정부가 올해 세입예산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잡았다며 세수 추계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하지만 경제 전문가 사이에선 정부가 올해 예산을 낙관적으로 잡은 것은 아니라는 시각이 많다. 정부의 올해 세입예산(400조5000억원)은 작년 국세 수입(395조9000억원)보다 4조6000억원 많다.

조동철 KDI 원장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세수 추계는 시차 문제가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오차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진짜로 중요한 것은 세수 추계 오차에 대해 사후에 재정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장치”라고 강조했다.

세수 펑크가 발생할 때 정부가 주로 쓰는 방법은 추가경정예산 편성이다. 세입 감소분에 맞춰 세출을 줄이거나 세수 부족분을 적자국채 발행으로 메꾸는 방식이다. 문제는 기재부가 올해 추경은 결코 없다며 선을 그었다는 점이다. 추 부총리는 “세수 부족 상태가 단기간 내 해소될 것 같진 않다”면서도 “현재 추경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추 부총리는 결산 때 발생한 세계잉여금과 기금의 여유자금, 연중 집행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 확실시되는 분야의 집행 효율화 등으로 대응하겠다는 계획이다. 올해 예산에 책정됐지만, 불용(不用)이 예상되는 사업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후 다른 사업 예산으로 전용하겠다는 것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지난해 불용예산 규모는 12조9000억원이다. 이와 함께 지난해 일반회계 세계잉여금은 6조원으로, 이 중 지방교부세 지급 및 채무상환을 제외하고 세입에 넣을 수 있는 돈은 2조8000억원이다. 정부가 올해 세수 결손 규모를 15조원 안팎에서 막는다면 이론적으로는 추경 편성 없이도 가능하다. 불용액을 모아서 쓰는 지출 구조조정 방식은 국회 동의를 거칠 필요가 없다는 장점도 있다.

다만 올해도 작년만큼의 불용예산이 발생하고, 이를 다른 예산으로 모두 전용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작년엔 코로나19 대응 관련 사업을 집행하지 않으면서 불용예산이 평년 대비 많았다. 올해 건전재정 기조 회복을 목표로 예산을 편성했기 때문에 불용예산 항목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시장에선 올 하반기 추경 편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안팎에선 ‘추경은 없다’는 추 부총리의 발언이 여러 가능성을 원천 차단해 버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석열 정부의 목표인 건전재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지만, 너무 섣불리 퇴로를 차단해 버렸다는 지적이다. 만약 정부가 부득이하게 하반기에 추경을 편성한다면 정책의 신뢰성에 큰 손상이 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국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세입은 변동이 심하고 예상하기 힘들지만, 세출은 정부가 상당 부분 의지를 갖고 집행할 수 있다”며 “경기회복을 위해 꼭 필요하다면 추경을 편성하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해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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