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공간의 크기가 같다고 할 때 그 안에 들어있는 작품들의 값이 가장 비싼 곳은 어딜까. 지금 서울 반포에서는 ‘단위 면적당 작품가격’이 최고 수준인 전시가 열리고 있다.
스페이스21(이일)의 개관전인 ‘비평가 이일과 1970년대 AG그룹’ 전이다. 이곳에는 김구림 박석원 서승원 심문섭 이강소 이승조 이승택 최명영 하종현 등 한국 현대미술 거장 9인의 수천만~수억원대 작품 16점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스페이스21의 첫번째 전시인데도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불러모을 수 있었던 데에는 이일(1932~1997)의 존재감이 컸다. 그는 한국 미술평론의 역사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이일의 딸 이유진씨가 갤러리의 대표를 맡고 있다.
이일은 프랑스 파리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하고 비평이라는 개념이 희박했던 1960년대 한국 미술계에 수준 높은 평론을 쏟아내며 평론계의 거목으로 자리잡았다. 30여년간 홍익대 미술대학에서 교수로 근무하며 수많은 후진 평론가들을 양성하는 업적도 남겼다.
1960년대 전위적 한국미술가들을 모아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그룹)을 결성한 건 그의 손꼽히는 업적이다. 그룹 멤버인 김구림 박석원 서승원 심문섭 이강소 이승조 이승택 최명영 하종현 등은 미술사적으로는 물론 시장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들이다.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도 올해 하반기 ‘아방가르드: 1960~70년대 한국의 실험미술’전을 열고 이들의 발자취를 조명할 예정이다.
이유진 스페이스21 대표는 “앞으로 비평가의 역할에 주목하며 갤러리를 운영해 나가겠다”고 했다. 전시장에서는 1970년대에 네 번 출간된 AG 출판물과 도록, 이일의 친필 원고, AG 전시 포스터와 작가들이 소장한 당시의 전시 사진들을 규합하는 아카이브 자료들을 함께 만날 수 있다.
전시를 기획한 정연심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는 “1970년대 작품과 근작들을 비교하며 그동안 작가들의 세계관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비교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한국의 아방가르드 미술의 전시를 한 눈에 압축적으로 볼 수 있는 밀도 높은 전시다. 6월 24일까지 열리며 일요일과 월요일은 휴관한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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