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여명. 한국화가 이영지(48)의 새로운 작품을 사고 싶다며 구매 신청을 해둔 사람들이다. 신작 구입희망자들의 대기행렬로서는 이례적으로 긴 편이다. 이영지 작가는 항상 송구하다. 그는 2년 전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그림을 그리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기다리는 분들께 죄송하다”고 말했다.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이영지 개인전 ‘스테이 위드 미(Stay with me)’에 55점이나 되는 신작이 나온 것은 작가의 미안한 마음이 반영된 결과다. 지난 번 개인전은 1층과 2층에서만 열렸지만 이번에는 작품 수가 워낙 많아 3개 층을 꽉 채웠다. 이영지 작가는 “작품을 기다리는 분들에게 한 점이라도 더 많은 그림을 보여주고 싶어서 미친 듯이 그렸다”며 “하루에 18시간씩 작업을 할 때도 많았다”고 했다.
그림들은 편안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지만 작업 과정은 결코 편치가 않다. 작품의 시작은 한지를 여러 겹 겹치고 아교 녹인 물을 칠한 뒤 말리는 ‘반수 처리’다. 색을 더 선명하게 내고 해충을 막기 위한 작업이다. 다음에는 원하는 색과 질감이 나올 때까지 밑색을 여러 번 덧칠하며 흐린 먹으로 무늬를 입힌다.
그런 뒤에 한지에 수를 놓듯 그림을 그린다. 나뭇잎을 그릴 때는 먹으로 미세하게 테두리를 그린 뒤 안에 다양한 색의 분채(조개 등 자연재료로 만든 물감)로 속을 채운다. 수많은 나뭇잎들을 이렇게 정성껏 그리니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이번 전시에 나온 신작들은 색감이 전보다 더 다채로워진 게 특징이다. 이재언 미술평론가는 평론을 통해 “안정적이고 편안한 색감과 한국화 특유의 농담(濃淡) 변화가 주는 생동감이 공존하는 작품들”이라고 평가했다.
시장에서의 뜨거운 인기를 증명하듯 전시장은 지난 12일 개막일 이른 아침부터 전국에서 몰려든 컬렉터들로 붐볐다. 전시는 6월 8일까지 열린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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