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1992년 이후 신흥국 지위가 30년 이상 유지되고 있다. 금융위기 직후 선진국 예비명단에 오르긴 했지만 2014년 재평가에서 신흥국으로 다시 추락했다. 한 번 탈락 후 재진입하기 위해선 정상적인 진입보다 2배 이상 노력이 필요한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퇴보한 셈이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규모, 무역액, 시가총액 등으로 본 하드웨어 위상은 세계 10위권에 속하는 선진국이다. 하지만 부정부패(정직성·도덕성·투명성) 등으로 본 소프트웨어 위상은 신흥국 중에서도 중하위군으로 분류된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윤석열 정부는 올해 MSCI 선진국 예비명단에 재진입한 뒤 2025년 6월부터 선진국 지수에 들어간다는 계획이었다. 출범 이후 지난 1년 동안 각고의 노력을 했다. 미국, 일본 등과의 정상외교를 펼쳐 갈라파고스 함정에서 벗어나 한국 자본시장이 개방적이라는 인식을 주는 데 성공했다. MSCI가 요구하는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개방, 외국인 등록제 폐지, 한국 지수물 사용 등도 적극 수용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주가조작 사태가 터지면서 공매도 전면 개방 요구를 수용하기가 어려워졌다. 9년 전 선진국 예비명단 탈락도 최순실 게이트라는 부정부패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던 만큼 올해 재진입이 안 되면 영원히 물 건너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관론까지 나오고 있다.
SG증권발 주가조작 사태는 국가신용등급 평가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 2016년 8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조정 이후 정체돼왔다. 올해 정례평가에서는 지정학적 위험과 펀더멘털 위험이 동시에 증가했다. 이번 주가조작 사건 등으로 부정부패까지 덮친다면 신용등급 전망이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될 확률이 높다.
한국 경제의 고질병인 부정부패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독일의 국제투명성기구(TI)는 한국을 경제발전 단계에 비해 부패인식지수(CPI)가 가장 떨어지는 국가로 분류했다.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는 부정부패가 한국 국민의 행복지수를 떨어뜨리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의 부정부패는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사회 지도층에 의한 지대추구형이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디스커버리, 라임, 옵티머스 사태 △부동산 개발에 따른 각종 프로젝트 리베이트 △상장사와 금융사 회장 등의 금융 사고 △테라, 위믹스 등 코인 관련 불법 자금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각국의 CPI와 성장률 간 관계를 보면 부정부패가 성장에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시장경제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경제발전 초기에는 관료, 정치인 등 사회지도층에 급행료를 치르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 이하인 저소득 개발도상국이 해당된다(Ⅰ단계).
하지만 경제발전 단계가 높아질수록 부정부패는 시장 기능을 마비시키고 외부불경제를 초래해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에 접어들 때 부정부패 고리를 청산하지 못하면 성장이 둔화하다가(Ⅱ단계), 3만달러 이상 선진국에서는 성장이 퇴보하는 현상이 발생한다(Ⅲ단계).
한국은 ‘Ⅲ단계’에 속한다. 단순생산함수(Y=f(K, L, A), K=자본, L=노동, A=총요소생산성)로 성장 동인을 분해해 보면 흔히 저성장 요인으로 지적되는 자본 섹터에서의 ‘낮은 민간 저축률과 토빈 q비율’, 노동 섹터에서의 ‘저출산·고령화’보다 총요소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으로 나온다.
이제부터 사회지도층의 부정부패를 척결해 총요소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성장 동인이 바뀌어야 한다. 한국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위상 간 균형만 맞춰도 성장률이 1%포인트 올라간다. 이번 주가 조작범과 같은 중대 경제사범은 미국처럼 지대추구 이익은 전부 회수하고 100년 이상 형량으로 다스리면 한국 경제는 제2의 도약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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