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1월 11일,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던 많은 미국인의 ‘리모컨 질’이 공영방송 PBS에서 멈췄다. 처음 보는 ‘폭탄 머리’ 남성이 붓을 들고 캔버스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밥 로스(사진)입니다. 앞으로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 프로그램을 맡게 됐습니다.”
그의 손놀림을 감상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다 보니 어느새 30분이 지나 있었다. 그리고 멋진 풍경화가 마법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참 쉽죠(That easy).”
이렇게 ‘전설적인 방송’이 시작됐다. 프로그램은 이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11년간 31시즌, 403회나 이어졌다. 전 세계 1억 명 이상의 시청자가 ‘밥 아저씨’를 만났다.
언제나 행복을 전하던 그였지만 정작 자기 삶은 순탄치 않았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했고, 집안 형편도 넉넉하지 않았다. 18세에 미국 공군에 입대한 것도 생계를 위해서였다. 이후 밥 로스는 20년간 근속한 뒤 상사로 제대했다.
군 생활이 적성에 맞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아는 밥 로스의 화풍은 그가 알래스카에서 복무할 때 완성됐다. 괴로웠던 경험이 그에게 큰 기회를 선사한 것. 그가 자주 얘기한 ‘행복한 우연’이었던 셈이다. “실수로 그림을 망쳐버렸다는 건 틀린 말이에요. 우리는 실수하지 않습니다. 행복한 우연이 있을 뿐이지요.”
밥 로스는 전역 후 미국 각지를 돌며 그림 강의를 시작했다.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수강생 부족으로 강의가 폐강되기도 했고, 수입이 없어 고생도 꽤나 했다. 특유의 ‘폭탄 헤어스타일’을 하기 시작한 것도 머리 손질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그는 용기를 잃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주기 위해 강의법 연구와 연습을 거듭했다. 그 덕분에 인지도가 차츰 쌓였고, 마침내 공영방송 PBS에서 그림 방송을 시작하게 됐다.
방송 환경은 열악했다. 제대로 된 장비가 없는 데다 하루에 2~3개씩 방송을 찍어야 했다. 하지만 자신의 방송을 보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힘이 솟았다. “여유를 가지고, 흘러가는 대로 하면 돼요(Take life easy, just let it go).” 밥 로스의 낙천적인 철학과 그림 실력에 감동받은 팬은 갈수록 늘어만 갔다.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1992년, 밥 로스에게 인생 최대의 비극이 찾아왔다. 아내를 암으로 잃은 것이다. 그래도 그는 방송을 통해 희망을 전했다. “그림에는 상반되는 요소가 필요합니다. 빛에 빛을 더해봤자 아무것도 생기지 않지요. 어둠에 어둠을 더해도 그렇고요. 어둠과 빛, 빛과 어둠이 계속되는 식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슬픔을 겪어야 나중에 오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지금, 기쁨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안타깝게도 밥 로스에게 허락된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 자신도 림프종(임파선암)에 걸렸기 때문이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3년 뒤인 1995년, 그는 52세의 나이로 아내 곁으로 갔다.
하지만 그가 남긴 감동은 수십 년이 흐른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유튜브에 올라온 그의 첫 번째 방송 녹화본에 달린 이 댓글만 봐도 알 수 있다. “여섯 살 때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른 다음날, 너무 슬퍼서 학교에 가지 않았어요. 그때 이 방송을 봤는데, 그 감동은 38년이 흐른 지금도 생생합니다. 영원히 이 그림을 기억할 거예요.”
생전에 그에게 별 관심이 없었던 정통 미술계도 미술의 문턱을 낮춘 그의 공로를 인정했다. 2019년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은 밥 로스가 사용한 화구(畵具)와 그림 몇 장을 영구 소장하기로 결정했다. 영국의 미술 잡지 프리즈는 이를 두고 이렇게 표현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가 마침내 미술계의 인정을 받았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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