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국민의힘이 14일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한 것은 예고된 수순이라는 분석이다. 지난달 국회 본회의 통과 전 당정이 내놓은 여러 타협안을 더불어민주당이 받아들이지 않고 본회의에서 처리했기 때문이다.
당정은 지난달 27일 법안이 통과된 뒤에도 간호단체 민주당 등과 물밑 협상을 수차례 이어왔다. 지난 11일 민주당에 네 가지 중재안을 제시한 데 이어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과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김영경 대한간호협회 회장의 단식농성장까지 찾아 설득을 거듭했다. 제정안이 직역 간 갈등을 유발하는 데다 의료법 체계의 혼란을 야기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재의 요구 시한(19일)을 닷새 남긴 이날 당정은 중재안을 도출하지 못한 채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게 됐다.
당정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법안이 국무회의에 부의되는 만큼 거부권 행사는 불가피하다는 것이 여당의 입장이다. 윤 원내대표는 이날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의료시스템 붕괴로 인한 국민들의 건강권 위협 등을 감안할 때 이제 입장을 정리해야 할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거부권 행사 시점’을 묻는 질문에 “조속한 시일 내에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이 16일 국무회의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당정은 간호단체 등과 협상을 계속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당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고 해서 협상과 논의를 중단하는 것은 아니다”며 “간호사들의 처우가 열악한 것을 알고 있고 직역 간 갈등도 큰 만큼 중재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는 정치적 판단도 영향을 미쳤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가 여론에 부정적으로 작용한 바 있어서다. 최대한 성의 있게 간호단체 등과 협상하는 모습을 보여 거부권 행사에 따른 여론 악화를 가능한 한 줄이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앞으로 방송법 개정안과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에도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여당은 관련 정치적 부담을 최대한 줄일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별개로 보건의료계 간 갈등은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의사와 간호조무사 단체 등은 제정안 통과에 반발해 17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12일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를 연 간호단체는 거부권 행사 시 단체행동에 나서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양길성/이지현 기자 vertigo@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