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는 오랫동안 한국 사람들에게 낯선 나라였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우리나라와 산업·경제적인 교류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 인구보다 적은 900만 명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소국(小國)이다 보니, 국제 뉴스에 나오는 일도 거의 없다. 국내에서 ‘존재감’이 없다 보니 오스트리아를 오스트레일리아로 잘못 아는 사람이 적지 않을 정도다.
이랬던 오스트리아 위상이 최근 들어 확 높아졌다. 유럽을 600년 동안 호령한 합스부르크 왕가 스토리와 구스타프 클림트 등 오스트리아 출신 예술인, 세계 최고 교향악단으로 꼽히는 빈필하모닉오케스트라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대한민국을 매료시켜서다.
얼마 전 서울 세종로 오스트리아대사관에서 만난 볼프강 앙거홀처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63)에게 이런 얘기를 들려줬더니, 얼굴 가득 미소가 번졌다. 그러더니 숫자 하나를 보여줬다. 지난해 오스트리아를 찾은 한국인 관광객의 평균 체류 기간이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에 비해 25%나 늘었다는 지표였다. 앙거홀처 대사는 “오스트리아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관심이 이렇게 높아진 건 131년 수교한 이후 처음일 것”이라며 “문화의 힘이 세다는 걸 다시 한번 절감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오스트리아 붐’이 일고 있습니다.
“정말 뿌듯합니다. 한국에서 오스트리아가 인기 있다는 건 관광 분야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2019년엔 오스트리아를 찾은 한국인 관광객의 평균 체류 기간이 1.6일이었는데 지난해엔 2.0일로 늘었습니다. 과거 한국 관광객에게 오스트리아가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사이에서 ‘잠시 지나쳐가는 곳’이었다면, 이제는 오스트리아를 체험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코로나19 여파로 항공편이 줄어든 탓에 절대 관광객 수는 감소했지만요. 이제 관광산업이 정상화된 만큼 더 많은 한국인이 오스트리아를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가 한국에서 뜬 이유가 뭘까요.
“오스트리아의 존재감이 높아진 건 지난해 한국과의 수교 130주년을 맞아 문화예술 교류를 대폭 늘린 덕분입니다. 오스트리아 최대 미술사박물관인 국립 빈미술사박물관(KHM)과 국립중앙박물관, 한국경제신문사가 함께 기획한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이 대표적이죠. 180년 전통의 빈필하모닉오케스트라 공연, 수원시립미술관의 ‘에르빈 부름 개인전’ 등 오스트리아 문화를 소개하는 행사가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에서 30건 열렸습니다. 올 들어서도 오스트리아 콘텐츠가 포함된 전시와 공연이 일곱 차례나 열렸습니다. 코로나19에도 이런 문화·예술적 교류를 끊지 않은 게 큰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가장 크게 기여한 문화예술 행사는 무엇이었나요.
“단연 ‘합스부르크 600년전’이었죠. 지난 3년간 한국에서 대사로 일하면서 가장 뿌듯하고, 기억에 남는 일입니다. 무려 33만 명의 관람객이 전시를 찾을 만큼 인기를 끌었죠. 그림뿐 아니라 갑옷, 공예품 등 합스부르크 왕가가 오랜 기간 모은 다양한 컬렉션을 짜임새 있게 구성한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오스트리아에서도 합스부르크 600년전에 대해 ‘전시 구성 수준이 굉장히 높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알렉산더 샬렌베르크 외교장관 등 지난해 10월 전시 개막 때 참석한 사람들도 감탄했거든요. 오스트리아 현지 언론들도 한국에서 합스부르크 전시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역사를 음악, 영상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흥미롭게 풀어낸 점이 특히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문화·예술 행사가 민간 교류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칩니까.
“당연하죠. 합스부르크 600년전을 본 관람객 중 상당수가 KMH의 컬렉션에 관심을 두게 됐고, 실제 방문으로 이어진 것으로 저희는 분석하고 있습니다. 합스부르크 컬렉션은 오스트리아 문화·예술 유산의 일부분입니다. 리히텐슈타인 왕실 컬렉션 등 오랜 역사를 지닌 예술품부터 리아우니히 미술관, 앙거레너 미술관, 하이디 호르텐 박물관 등 개인 컬렉터들이 세운 현대미술관까지, 오스트리아는 다양한 문화유산을 갖고 있지요. 합스부르크 600년전이 오스트리아 문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마중물’ 역할을 한 만큼 앞으로 더 많은 오스트리아 문화예술을 소개할 계획입니다.”
▷요즘 한국 문화에 대한 오스트리아의 인식은 어떤가요.
“한국에서 오스트리아가 인기가 있는 것처럼 오스트리아에선 K팝, K드라마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방탄소년단(BTS) 등 K팝 팬이 늘면서 한국을 친근하게 느끼는 분위기가 생겼어요. 제가 살아보니, 한국은 고궁과 현대 건축물이 공존하는 매력적인 나라입니다. 이걸 잘 살리면 오스트리아는 물론 전 세계에서 한국을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두 나라 간 교류와 협력이 얼마나 더 확대될까요.
“예술은 한 국가에 대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스트리아와 한국은 이미 자동차, 수소연료전지 등 다양한 산업에서 교역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문화·예술적 교류로 서로에게 ‘최고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는 국가’라는 인식을 심어줬습니다. 이런 긍정적인 이미지를 통해 한국과 오스트리아가 앞으로 환경 기술 등 더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알리고 싶은 오스트리아의 문화유산이 더 있습니까.
“지금까지는 옛 오스트리아의 명작과 음악을 다뤘다면, 앞으로는 오스트리아의 현대미술을 중점적으로 소개하려고 합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미디어아트의 거장’인 페터 바이벨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서울 한남동에 있는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에서는 현대 회화의 거장으로 꼽히는 마르타 융비르트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죠. 최근 경기 수원에서 5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은 오스트리아 조각가 에르빈 부름도 리만머핀 서울에서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중요한 건 이 모든 행사가 한국의 큐레이터들과 공동으로 기획하고 준비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오스트리아의 예술적 자산이 한국의 수준 높은 전시기획과 만나면서 좋은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 조예깊은 40년 '베테랑 외교관'
2020년 7월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로 부임한 이듬해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냈다. 앙거홀처 대사 부부는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과 ‘에르빈 부름: 나만 없어 조각’ 등 오스트리아 관련 전시·공연은 물론 국내에서 열리는 주요 전시·공연을 빼놓지 않는 예술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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