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5월 16일 09:59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전세계 최고 인재들이 사모펀드(PEF)에 모이는 이유는 단연 '성과보수(Carried interest)' 때문이다. PEF는 펀드 규모의 1% 남짓을 받는 운용보수 외에 성과보수를 추가로 받는다. 연기금 등 투자자가 설정해 놓은 연 8%의 기준수익률(허들레이트)을 초과하는 수익을 달성하면 초과수익의 20% 안팎을 소수 파트너들이 나눠 갖는다. 수조원에서 많게는 수십조원의 거래를 소화하는 PEF 운용 특성상 한 건의 거래로 많게는 수천억원에 달하는 성과보수를 받기도 한다. 그만큼 세금도 엄청나다. 돈방석에 앉은 PEF 파트너들이 세금을 한국에서 낼지, 해외에 낼지도 관심사다.
EQT 합병된 베어링 인사들…OB맥주 이후 1억달러 보너스 주인공?
올해 상반기 투자은행(IB)업계 종사자들에게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옛 베어링프라이빗에쿼티(베어링PEA)에서 아시아부문 대표를 지낸 김한철 전 대표의 '잭팟' 소식이다. 그가 속했던 베어링PEA는 지난해 10월 유럽계 PEF운용사인 EQT파트너스에 68억유로(약 9조2000억원)의 기업가치로 합병됐다. 이 과정에서 회사를 떠나게 된 김 전 대표는 보유한 베어링PEA 지분을 매각하고 누적된 성과급을 일시불로 받게됐다. 이 금액만 현금으로 최소 1억달러에 달할 것이란 게 업계의 전망이다.김 전 대표는 리먼브러더스와 크레디트스위스(CS) 등을 거쳐 2009년 베어링PEA에 합류했다. 홍콩에 기반을 두고 베어링PEA의 한국 투자를 총괄해왔다. 2012년 교보생명보험, 2016년 한라시멘트, 2018년 로젠택배, 2019년 애큐온캐피탈, 2020년 신한지주 등에 투자했다.
베어링PEA은 글랜우드PE와 공동으로 3650억원에 인수한 한라시멘트를 2년여만에 두 배 넘는 7740억원에 아세아시멘트에 매각하면서 스타 운용사로 떠오르기도 했다. 지난해엔 파트너였던 글랜우드로부터 PI첨단소재를 인수하기로 했다 돌연 철회하면서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전까지 국내에서 1억 달러 이상의 성과보수가 거론된 건은 2014년 KKR과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컨소시엄이 OB맥주를 AB인베브에 매각한 거래로 되돌아간다. 2009년 19억달러(약 2조2천767억원)에 인수한 OB맥주를 58억달러(약 6조1000억원)에 매각하면서 두 PEF가 얻은 차익만 40억달러(약 4조2500억원)에 달했다.
어피너티에선 단 한건의 거래로 당시 실무를 총괄한 이철주 부회장이 1억5000만달러 이상을 성과 보수로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고려할 때 박영택 회장 등 창업자들은 2억달러 이상의 성과급을 수령했을 것으로 보인다.
어피너티의 대규모 성과급은 KKR의 지배구조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KKR에서 거래를 총괄했던 조셉 배가 받은 성과급은 이철주 부회장의 3분의 1 수준인 5000만달러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조셉 배 대표가 분배에 대한 불만으로 독립을 꾀하자 헨리 크래비스 KKR 창업자가 그를 설득하면서 내부 입지를 굳혔다는 설도 나온다. 회사에 남은 조셉 배 대표는 2017년 공동 COO(최고운영책임자)로 고속 승진한 데 이어 지난해엔 KKR의 공동 CEO로 승승장구 중이다.
해외에 내면 세금 절반…한국 떠나는 사례들도
대규모 성과보수 수령과 함께 이어지는 PEF 인력들의 고민은 세금이다. 내로라하는 PEF에서 성과보수를 수령한 운용역들은 한국에선 금융소득종합과세에 포함돼 최고 세율인 45%(지방소득세 포함 시 49.5%)의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미국은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성과보수를 자본이득(Capital gain)으로 간주해 최대 20%를 과세한다. 한국이 아닌 미국에 세금을 내면 절반 가깝게 세금을 아낄 수 있다.베어링PEA가 국내에서 다수의 거래를 단행해 수익을 냈지만 법인과 펀드설립 모두 해외에서 이뤄진 글로벌 PEF다. 투자 의사결정 과정도 대부분 현지에서 이뤄졌다. 외국 국적을 보유 중인 것으로 알려진 김 전 대표는 성과 보수와 지분 매각 차익에 따른 세금도 홍콩 등 현지에 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어피너티의 박 회장 등 핵심 파트너들도 OB맥주 매각 시점부터 한국을 떠나 홍콩 등 해외에서 거주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에서 활약하는 일부 PEF 파트너급 인사들도 절세를 위해 해외 시민권을 얻은 후 1년 중 183일 이상을 해외에 거주하며 세금을 현지에 내는 사례들이 자주 관측된다. 국내 과세당국이 가장 중점적으로 따지는 거주지 요건을 피하기 위해서다.
다만 성과보수로 거둔 수익이 클 경우 과세당국의 감독이 더욱 촘촘하게 적용되는 사례도 있다. 과세당국이 형식적 절차를 악용했다는 식으로 해석할 경우 원칙적으론 형식에 맞더라도 실질 과세 원칙을 적용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체류 기간 뿐 아니라 국내에 직업을 두거나 법인을 두고 소득이 발생했을 경우, 또는 생계를 같이 하는 가족이 국내에 거주하는 지 여부 등이 추적되기도 한다. 과세당국을 대상으로 불복심판에 나설 수 있지만 개인 입장에선 걸리는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아 쉽지 않은 선택지다.
한 대형 법무법인 관계자는 "1억달러 이상 큰 돈을 수령한 인사들에겐 대형로펌에서도 세법 규정과 무관하게 국내 거주지, 법인 등을 처분하고 가족들과 해외에 가서 최소 3년간은 한국에 들어올 생각 하지 말라고 컨설팅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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