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특유의 감성이 좋아서 일본식 문화를 꺼리지 않아요. 일본까지 가지 않아도 국내에서 기모노를 입고, 일본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건 더 좋죠"
경기 동두천의 한 '일본풍 테마파크'에서 기모노를 입고 거리를 돌던 김모 씨(29)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일본 느낌이 물씬 나는 테마파크가 인기라서 한 번 와봤는데, 일본 여행하러 온 듯한 느낌이 들어서 만족스럽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씨는 "일본에 대해 나쁜 것은 나쁘게, 좋은 것은 좋게 생각하는 식으로 각각 다르게 받아들이는 편"이라며 "한창 '노재팬(No Japan)'이 왕성할 때 일본 제품 구매나 여행을 하는게 눈치가 보여 꺼려졌지만, 워낙 일본 콘텐츠나 문화를 좋아했던 탓에 이제는 즐기고 싶은 건 눈치를 안 보고 소비한다"고 설명했다.
'노재팬 열풍'은 옛말이 됐다. '노재팬'(No Japan)은 말 그대로 일본 여행 및 상품 '불매운동'을 뜻한다. 일본 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 동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2019년 7월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를 시작한 뒤, 반일 감정이 격화되며 '노재팬' 운동이 발발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일부 사람들을 중심으로 '반일'에 대해 피곤함을 호소하며 '예스재팬(Yes Japan)'이 등장했다. 일본 제품이나 문화라는 이유로 무조건 거부하지 않고, 콘텐츠 자체에 열광하는 것. 일본 맥주 등 제품 수요 회복에 이어 한국에서 일본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일본풍 테마파크'까지 최근엔 '핫플'로 등극했다.
경기 동두천의 '니지모리 스튜디오'와 경북 경주 '토모노야호텔&료칸'등을 방문한 인증샷은 SNS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들 모두 일본의 전통 마을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건물과 체험 시설로 방문객들은 직접 일본에 가지 않아도 일본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낼 수 있다. '예스재팬' 분위기와 맞물려 최근엔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2021년 9월 개관에 촬영지로 주로 쓰였던 니지모리 스튜디오의 경우에도 지난 주말 10대, 20대로 보이는 젊은 인파로 곳곳이 붐볐다. 일본의 소녀 축제를 뜻하는 '소죠마츠리' 기간을 맞아 어린 여자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도 많았다. 2만원이라는 가격에 일본 마을을 체험할 수 있는 테마파크로 입소문이 나면서 관람객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니지모리 스튜디오 관계자는 "이곳 전체는 에도시대 마을 형태를 구현해놨는데, SNS 업로드용으로 일본 분위기가 나는 사진을 찍기 좋은 탓에 특히 20~30대분들이 많이 찾으신다"며 "방문객들이 특히 만족하는 시설은 일본식 숙소인 료칸인데, 가격 때문에 처음엔 다들 갸우뚱하시면서도 특유의 일본 감성을 즐길 수 있어 힐링하고 간다는 반응을 해주신다"고 귀띔했다.
한일 관계 개선을 바라는 젊은 층이 많아지면서, 일본 제품과 문화에 대한 긍정적 감정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여론조사 기관인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20~30대 626명을 대상으로 '한일관계 인식'을 조사한 결과, 긍정적이라고 답한 응답이 42.3%, 부정적이라는 답변이 17.4%로 긍정이 부정보다 2.4배 높았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51.3%)은 일본 방문 경험이 있었고, 이 중 96.4%가 관광·여행차 일본을 다녀왔다고 응답했다. 일본에 대한 호감도는 10점 만점에 5.7점으로 평균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노재팬 상품 중 하나로 꼽혔던 일본 맥주에도 사람들이 다시 관심을 보이는 추세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3월 일본 맥주 수입액은 662만6000달러(약 88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148% 급증했다. 이는 노재팬 운동이 본격화되기 직전인 2019년 2분기 이후 최대 규모로, 수입량이 완전한 회복세에 접어들었다. 같은 기간 일본 위스키·소주·포도주 수입액 역시 지난해 대비 각각 80.4%, 20%, 25.2% 크게 늘었다.
극장가도 '예스재팬' 열기로부터 예외가 아니다. 올해 새해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누적 관객 수 460만명을 넘어서며 흥행을 주도하더니, 이어 '스즈메의 문단속'은 올해 국내 개봉작 최초로 누적 관객 530만명을 돌파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국내에서 500만 관객을 동원한 건 '스즈메의 문단속'이 처음이다.
한·일 관계 회복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 5월 7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한·일 정상회담 이후 정상 간 셔틀 외교가 복원되는 등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일본 현지 언론에서도 일본 문화와 제품을 즐기는 MZ세대를 '반일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는 예스 재팬 세대'라 지칭하며 "한국이 모든 면에서 일본을 거부하는 '노재팬'에서 이제는 정반대의 '예스재팬'으로 돌아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3월 15일 일본 산케이신문은 "윤 대통령이 일본 대중문화 등에 관심이 많은 한국 청년 세대가 여론을 바꿀 것에 기대를 걸고 있다"며 "예스재팬 세대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을지가 한일관계를 좌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사히신문도 한 대학원생의 말을 인용해 "한국 청년 세대는 역사 문제와 일본 국민, 일본 문화를 동일시하지 않는다"며 "(문재인 정부 때의 일본 제품) 불매 운동으로 일본 전체를 증오하거나 배척하는 데 지친 부분도 있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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