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시장 맞수인 애플과 삼성전자가 상반된 재무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는 보유한 유동성 상당액을 단기 현금성 자산에 묻어둔 반면 애플은 회사채 등으로 자금을 적극 운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매년 수십조원을 설비투자금으로 쓰는 만큼 현금이나 1년 미만 단기상품 위주로 자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애플은 생산을 전부 하청업체에 맡기고 있어 말 그대로 ‘여윳돈’을 굴리는 셈이다.
15일 애플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가 올해 1분기 말 보유한 금융자산은 1663억3300만달러(약 221조2000억원)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현금성 자산(현금 및 만기 1년 미만 금융상품)은 558억7200만달러(약 74조3000억원)에 그쳤다. 나머지 1104억6100만달러(약 146조9000억원)는 만기 1년 이상의 금융상품으로 운용했다.
애플이 보유한 만기 1년 이상의 금융상품을 세부적으로 보면 회사채(650억1800만달러), 주택저당증권(MBS·202억2500만달러), 미국 국채·기관채(184억8800만달러), 해외 국채(62억1700만달러), 미국 지방채(5억1300만달러) 등으로 구성됐다.
애플의 채권 수집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1분기에만 111억9700만달러(약 14조8900억원) 상당의 채권을 사들였다.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241억6000만달러)의 절반에 육박하는 규모다. 1분기 설비투자액(67억300만달러)보다는 두 배가량 많았다. 애플의 자금 운용 방식은 제조업체보다는 자산운용사에 가깝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삼성전자의 재무전략은 애플과 상반된다. 주로 예금 등 현금성 자산에 자금을 묻어두고 있다. 지난해 말 보유한 금융자산은 128조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현금성자산은 115조2273억원이다. 나머지 12조8025억원은 만기 1년 이상의 금융상품 및 주식 등으로 굴렸다.
삼성전자가 보유한 주식은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인 ASML(지분 1.5%·장부가치 4조2871억원), 미국 유리제조업체 코닝(9.5%·3조2382억원), 중국 전기차 업체 BYD(0.1%·1110억원) 등이다. 이들 주식은 전략적 협력관계를 위해 사들인 것으로 분석된다.
설비투자로 유출되는 자금이 많지 않은 만큼 여윳돈이 상대적으로 많다. 애플은 이 자금을 금리가 높은 중장기 회사채 등으로 굴려 운용수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반도체 설비 구축에 매년 수십조원을 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50조원가량을 반도체 설비에 쏟을 방침이다. 1분기 설비투자·연구개발(R&D)에만 17조2800억원을 썼다. 분기 기준으로 역대 최대다. 막대한 설비투자금을 수시로 뽑아 쓸 준비를 해야 하는 만큼 현금 보유액이 상대적으로 많다. 반도체 경기의 부침이 심한 것도 ‘현금 안전판’을 가져가려는 이유다. 최근처럼 반도체 경기가 나쁠 때에 대비해 현금 등 안전자산을 충분히 쌓아두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경영권 공격에 대비해 자사주 매입용으로 현금을 넉넉히 확보했다는 평가도 있다.
막대한 설비투자를 하는 삼성전자가 애플에 비해 국가 경제에 크게 기여한다는 평가도 있다. ‘낙수 효과’로 고용 창출과 산업생태계 형성에 도움을 주고 있어서다.
올해 삼성전자는 설비투자를 통해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전망이다. 한국은행 산업연관표에 따르면 투자의 취업유발계수는 9.9명이다. 투자 취업유발계수는 10억원 규모의 투자를 했을 때 직·간접적으로 창출된 취업자 수를 의미한다. 삼성전자가 올해 50조원가량을 국내에 투자한다고 가정하면 단순 계산으로 49만5000개의 일자리가 생겨난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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