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법원은 1978년부터 유지되어 오던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는 경우에는 동의가 없더라도 변경의 효력이 있다’는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을 폐기하였다(대법원 2023. 5. 11. 선고 2017다35588, 35595 판결). 그간 대법원은 취업규칙 변경내용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종전 근로조건 또는 취업규칙의 적용을 받고 있던 근로자의 집단적 의사결정 방법에 의한 동의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적용을 부정할 수는 없다는 취지로 계속적으로 판단해 왔었는데(대법원 1978. 9. 12. 선고 78다1046 판결 등 다수의 판결), 이러한 입장을 대법관 6명이 반대하는 가운데 7명이 찬성하였다는 이유로 45년만에 변경한 것이다.
판결사안은 법정근로시간을 단축하여 주 5일 근무제를 도입한 구 근로기준법(2003. 9. 15. 법률 제6974호로 개정된 것)이 2004. 7. 1.부터 피고 사업장에 적용되자 과장급 이상의 간부사원에게만 적용되는 간부사원 취업규칙을 별도로 제정하였는데, 그 내용은 월차휴가제도를 폐지하고 연차휴가에 25일의 상한을 신설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피고는 전체 근로자 과반수가 가입한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지는 못했으나 간부사원 89%에게 동의를 받았고, 그 후 피고는 연월차휴가수당 상당액을 2005년 10월경 기본급 인상으로 보전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직원이 간부사원 취업규칙 중 연월차휴가와 관련된 부분은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2004년부터 지급받지 못한 연월차휴가수당 상당액을 청구하였다. 필자의 견해로는 판결사안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될 수 있는 전형적인 사안이었다.
이에 대해 원심은 연월차휴가수당 상당액을 2005년 10월경 기본급 인상으로 보전하려고 했더라도, 이는 간부사원 취업규칙의 제정·시행과는 별개의 조치이므로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 여부를 판단할 때 고려할 요소가 아니고, 간부사원 취업규칙 제정 당시 간부사원이었던 직원 뿐만 아니라 장래 간부사원으로 승진할 가능성이 있던 일반직·연구직·생산직 등의 직원들까지 포함한 근로자 집단이 간부사원 취업규칙 중 연월차휴가와 관련된 부분의 동의주체가 되는데 이들에 대해 동의를 받지 않았으므로 해당 부분은 무효라고 보았다.
이에 대해 피고는 상고심에서 예비적으로 간부사원 취업규칙 제정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대법원 다수의견(7명)은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면서 근로자의 집단적 의사결정방법에 따른 동의를 받지 못한 경우,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들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하였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해당 취업규칙의 작성 또는 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유효성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여, 사회통념상 합리성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그 이론 자체를 폐기하였다.
한편 다수의견과 달리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는 대법원이 오랜 기간 그 타당성을 인정하고 적용하여 온 것으로서 현재에도 여전히 법리적으로나 실무적으로 타당하므로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소수의견(6명)이 있었다. 이 판결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을 것이고, 향후 평석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서는 다수의견의 주요 논거를 소개하고 이에 대한 소수의견의 반박내용을 보고자 한다. 필자의 견해도 상당 부분 소수의견과 동일하다.
다수의견은 근로기준법에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이 규정되기 전인 1970년대에 대법원 판례를 통해서 동의요건과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이 정립되었으나 1989년 근로기준법이 제95조 제1항에서 취업규칙의 집단적 동의 요건을 입법화하면서 동의요건만 규정하고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을 명시적으로 입법하지 않았으므로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의 규범적 기초가 약하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그러나 1989년 근로기준법 개정은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을 포함하는 기존의 판례 법리를 명문화한 것일 뿐 새로운 법리를 만든 것이 아니다. 비록 위 법문은 집단적 동의 요건만을 규정하고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는 함께 명시하지 않았으나, 이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이라는 용어가 가지는 일반성, 추상성으로 인하여 법문에 명시하는 것이 입법기술적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지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배제하고자 한 의사였다고 볼 수 없다. 단순히 입법내용의 형식성에 근거하여 현행법이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을 배제하였다고 보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다수의견은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는 헌법 제32조 제3항, “근로조건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하여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제4조를 들면서, 근로자가 가지는 집단적 동의권은 사용자의 일방적 취업규칙의 변경 권한에 한계를 설정하고 헌법 제32조 제3항의 취지와 근로기준법 제4조가 정한 근로조건의 노사대등결정 원칙을 실현하는 데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절차적 권리로서, 변경되는 취업규칙의 내용이 갖는 타당성이나 합리성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
그러나, 노사합의를 성립요건으로 하는 단체협약과 달리 취업규칙의 작성·변경권은 기본적으로 사용자에게 있고 근로자들의 동의 여부가 취업규칙의 성립요건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취업규칙의 불리한 변경에 대하여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도록 한 것은 사용자의 취업규칙 작성·변경 권한의 남용을 방지하는 데에 근본 취지가 있다. 사용자가 변경하려는 취업규칙의 내용이 관련 법령의 변화 및 그 취지를 반영하거나 단체협약에서 정한 다른 근로조건의 변경을 반영하는 경우 등 변경할 내용의 타당성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어 그야말로 누가 보더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는 경우에는 사용자의 취업규칙의 작성·변경 권한을 굳이 제한할 이유가 없으므로, 이러한 변경에 대해서까지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못하였다고 하여 무효라고 볼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법적 안정성 측면에서 다수의견에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소수의견이 적절히 지적하는 바와 같이 그동안 대법원이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인정한 사안을 살펴보면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가 개념 자체가 매우 불확정적이라거나 근로기준법이 예정한 범위를 넘어 사용자에게 근로조건의 일방적인 변경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굳이 법적 안정성을 침해하면서까지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폐기할 필요가 무엇인지 의문이다.
판례 변경은 실질적으로는 법개정이나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과 동등한 파급효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매우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이번 판결은 다수의견이 7명으로 소수의견 6명에 비해 단 한 명이 많을 뿐이었다. 위헌결정에는 헌법재판관 중 9명 중 6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대법관들 중에 거의 절반이 폐지를 반대하는 법리라면 법적 안정성을 고려할 때 굳이 폐지하지 않는 것이 타당했을 것이다. 소수의견이 지적하고 있듯이 어떤 사업장에서 근로자 집단의 동의 없이 취업규칙이 불리하게 변경되었지만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되는 경우라면 근로자들도 이를 타당하다고 보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채 장기간 유효한 규범으로 수용하여 온 경우가 많을 것인데,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폐기하게 되면 사업장에서 장기간 승인되어 온 타당한 규범임에도 불구하고 집단적 동의절차가 없었다는 이유로 무효라는 판단을 면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결과가 과연 타당하고 정의로운 결과인가.
소수의견의 판시내용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친다.
"판례의 변경은 단순히 어떠한 법 이론에 대한 선택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상황과 사회일반의 인식, 기존 판례규범의 실효성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을 고려하여 결정하여야 한다. 사회일반의 신뢰가 구축된 현재 실무적으로 정착된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폐기하여야 할 필요성과 당위성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노동그룹장/중대재해대응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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