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할 때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못한 경우에도 변경된 취업규칙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는 경우 그 유효성을 인정한 기존 판례를 폐기하는 판결을 선고했다(대법원 2023. 5. 11. 선고 2017다35588, 35595 판결, 이하 ‘대상판결’).
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되자 해당 판결의 취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일부 언론에서는 위 판결로 원고(근로자)들이 승소했다는 취지로 보도하기도 했다. 대상판결은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음에도 각자의 방식대로 해석들을 하고 있어서 대상판결의 취지에 대해 좀 더 상세히 설명하고 판결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제시한다.
위 판결의 사실관계를 간략히 소개하면 이렇다.
피고 회사는 2004년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한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에 따라 기존 취업규칙과 별도로 간부사원들에게만 적용되는 취업규칙을 별도로 제정했고, 간부사원 취업규칙에는 월차휴가제도를 폐지하고 상한이 없던 연차휴가일수를 25일로 정하는 등 개정 근로기준법의 내용을 반영했다. 다만, 개정 당시의 대법원 판례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시 해당 규정을 적용받는 근로자집단의 동의만 받으면 되었고(고용노동부 행정해석도 동일), 피고 회사는 그 대법원 판례에 따라 변경되는 취업규칙을 적용받는 간부사원들의 약 89% 동의를 받았다.
그런데 위 동의를 받은 후 대법원 판례가 변경되면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시 동의를 받는 주체가 '해당 취업규칙을 당장 적용받는 근로자집단 뿐 아니라 장차 그 집단에 들어올 수 있는 근로자들'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했고(대법원 2009. 5. 28. 선고 2009두2238 판결), 대상판결의 2심은 변경된 대법원 판례에 따라 간부사원들만의 동의가 아니라 장래 간부사원으로 승진할 가능성이 있던 일반직, 연구직, 생산직까지 포함한 근로자 집단의 동의를 받지 않았으므로 무효라고 판단한 것이다. 참고로, 이미 피고회사 근로자들 일부가 동일한 내용으로 소송을 제기했고, 해당 판결은 피고 회사 승소로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대법원 2009. 3. 12. 선고 2008다98419 판결)이 선고된 바 있다.
피고회사는 대법원에 상고하면서 불이익한 취업규칙 변경이 아니고, 설령 불이익 변경이더라도 해당 내용은 개정된 근로기준법의 내용을 반영한 것일 뿐 아니라 근로자집단의 동의를 받을 당시에 유효했던 대법원 판례를 신뢰하여 간부사원들만의 동의를 받았던 것이며, 간부사원으로 승진할 가능성이 극히 적은 생산직까지 포함해서 동의를 받게 되면 간부사원들의 근로조건을 그들과 관련이 없는 생산직이 결정을 하는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한다고 주장하며,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어 유효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판결의 함의…피고의 취업규칙 변경을 무효로 본 것인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피고의 취업규칙 변경이 유효할 수 있다는 취지로 피고(회사) 패소 부분을 파기하여 원심 법원(2심)으로 돌려보내며(환송) 근로자들의 집단적 동의권 남용이 있었는지를 다시 판단하라고 했다. 따라서 피고(회사)의 승소이다. 만약 피고가 상고한 내용(취업규칙 변경이 불리한 변경이더라도 유효)이 타당하지 않았다면 굳이 피고의 패소부분을 파기하고 환송할 필요 없이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대법관 6명이 대법관 7인의 다수의견(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 폐기)에 대해 반대하면서도 '반대의견'을 내지 않고 '별개의견'을 낸 이유도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을 폐기해서는 안된다는 점에서는 다수의견에 반대하지만, 다수의견이 피고의 취업규칙 변경이 유효할 수 있다는 취지로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한 결론에는 동의를 했기 때문이다.
◆판결의 함정…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은 왜 폐기했나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은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이라는 개념 자체가 매우 불확정적이고 근로기준법 제94조 제1항 단서의 명문규정에 반하며 근로조건의 노사대등결정 원칙에 위배되어 폐기되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도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권 남용 법리'를 통해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시 동의를 받지 않았더라도 예외적으로 유효할 수 있다고 하면서 새로운 법리를 제시했다.
판례, 특히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 적용해 왔던 판례의 법리를 변경하는 경우라면 일반인인 사회 구성원들을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위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은,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을 폐지한 것에 대한 설득력도 떨어질 뿐더러 '집단적 동의권 남용 이론'을 도입한 것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법률의 근거가 없기 때문에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을 폐기한 것이라면 집단적 동의권 남용 이론 역시 법률에 근거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은 왜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을 폐기하면서도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권 남용 이론을 제시한 것일까?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시 근로자가 가지는 집단적 동의권이 사용자의 일방적 취업규칙 변경 권한에 한계를 설정하고 근로조건 노사 대등결정 원칙을 실현하는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하더라도, 결국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로자들이 집단적 동의권을 가진다는 이유로 계속 거부할 경우에는 집단적 동의가 없더라도 그 유효성을 인정해야 하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권 남용' 이론 역시 근로조건 대등결정 원칙을 제한하는 것일 뿐 아니라 명문의 근로기준법 제94조 제1항 단서 조항에 반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과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한편 다수의견이 말하는 '불확정적인'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에 비해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권 남용'은 과연 명확한 개념으로 볼 수 있는가? 다수의견은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한 경우란 '①관계 법령이나 근로관계를 둘러싼 사회 환경의 변화로 취업규칙을 변경할 필요성이 객관적으로 명백히 인정되고, ②집단적 동의를 구하기 위한 사용자의 진지한 설득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③노조나 근로자들이 합리적 근거나 이유 제시 없이 취업규칙 변경에 반대했다는 등의 사정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과연 위 3가지 조건이 어느 정도에 이르러야 하는지가 불명확하다는 점에서는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과 차이가 없다. 오히려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은 1977년 판결에서부터 인정되어 와서 오랜 기간에 걸쳐 판단기준이나 사례가 축적되어 집단적 동의권 남용 이론보다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 줄 수 있다. 그 뿐 아니라 실제로 1977년 이후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이유로 집단적 동의가 없는 취업규칙이 유효하다고 인정한 사례는 10건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엄격하게 적용해 왔다.
과연 45년 넘게 인정해 왔던 판례 법리를 폐지하고 '집단적 동의권 남용'이라는 새로운 판례 법리를 추가할 현실적인 필요가 있었을까? 이번 사건에서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거의 인정하지 않았던 기존 판례처럼 엄격하게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을 적용하면 안되었을까? 아마도 다수의견 역시 피고 회사의 간부사원 취업규칙 변경을 생산직까지 포함한 전체 근로자들 과반수의 동의가 없었음을 이유로 무효라고 판단하기는 어려운데, 현 시점에서 근로자들이 비판하는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을 근거로 피고의 상고를 인용하기는 부담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다수의견은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은 폐기하면서도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권 남용 이론을 통해 피고의 취업규칙 변경에 유효성을 인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위 다수의견의 새로운 시도로 인해 우리 사회는 다시 한번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권 남용'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혼란과 법적 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와 유사한 예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통상임금' 개념을 명시하면서 '재직자 조건'이 있을 경우 고정성이 탈락되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놓고서, 최근 대법원에서 이와 반대되는 원심판결에 대해 이유도 설시하지 않은 채 심리불속행 기각결정으로 확정시킨 사례일 것이다(대법원 2022. 11. 10. 선고 2022다25278 판결).
이광선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