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위 '공짜야근' 또는 장시간 근로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포괄임금제를 폐지 또는 엄격하게 제한하는 법안들이 논의되고 있다. 포괄임금제는 실제 근로시간을 따지지 않고 매월 일정액의 시간외근로수당을 지급하거나 기본임금에 제수당을 포함해 지급하는 임금산정방식으로 1992년 대법원에서 포괄임금제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후 판례에 의해 인정되기 시작했다.
◆포괄임금제의 유효 요건
대법원 판례는 포괄임금제에 대해 점차 제한적이고 유효요건을 엄격하게 하는 방향으로 변해왔다. 그 이유는 우리 근로기준법의 기본 원칙이 각 근로자의 실 근로시간에 따라 시간외 근로수당을 산정하여 지급하는 것이고, 예외적으로 실 근로시간의 산정이 어려운 경우가 아니라면 이러한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대법원은 포괄임금제가 유효하려면 △감시·단속적 근로 등과 같이 근로시간, 근로형태와 업무의 성질을 고려할 때 근로시간의 산정이 어려운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여야 하고 △또한 포괄임금제를 적용하더라도 근로자에게 불이익이 없고 여러 사정에 비추어 정당하다고 인정되어야 한다고 본다(대법원 2014.6.26. 선고 2011도12114 판결 등). 즉, 포괄임금제가 유효하기 위해서는 '근로시간의 산정이 어려운 사정'이 존재하여야 하며, 이러한 사정이 존재하는 경우라도 하더라도 근로자에게 불이익이 없어야 하므로, 포괄임금에 포함된 법정수당이 근로기준법이 정한 기준에 따라 산정된 법정수당에 미달한다면 그에 해당하는 부분은 근로자에게 불이익하여 무효이고 사용자는 근로기준법의 강행성과 보충성 원칙에 의하여 근로자에게 그 미달되는 법정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는 입장이다.
또한 설령 근로계약서나 임금협정서에 임금을 포괄임금 방식으로 한다고 기재가 돼있더라도 단체협약, 취업규칙, 급여규정, 급여명세서 등에 기본급과는 별도로 연장ㆍ야간ㆍ휴일근로수당 등을 세부항목으로 나누어 지급하도록 정하고 있는 경우에는 포괄임금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2020.2.6. 선고 2015다233579 판결 등).
◆포괄임금제 폐지, 실효성 있을까
그런데, 최근 정치권에서 포괄임금제를 폐지하는 법안들이 논의되고 있다. 올해 초 정부가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에 대해 ‘장시간 근로’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며 청년층을 중심으로 정부에 대한 여론이 악화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포괄임금제를 제한하거나 폐지하고 사용자에게 근로시간 측정 기록을 의무화하는 등 조금씩 다른 내용을 가진 4건의 포괄임금제 폐지 또한 제한 법안이 발의된 상태이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포괄임금제 폐지 주장에 부정적이다. 즉, “포괄임금제 오남용은 근절해야 하지만, 실제로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직종, 직군, 사업장이 있기 때문에 제도가 없어질 경우 혼란, 노사 갈등, 많은 편법과 오남용이 생길 수 있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통계적으로도 고용노동부가 2020년 10월 전국 10명 이상 사업장 2522곳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37.7%가 법정수당을 실제 일한 시간으로 계산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지급했다.
뿐만 아니라, 실제 기업 현장에서 포괄임금제의 필요성은 코로나 이후 더욱 커지기 시작하였는데 재택근무 및 원격 근무가 일상화가 되면서 근로자의 개별 근로시간을 측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기업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실제 필자가 조언하고 있는 많은 외국계 회사는 전면 또는 근로자마다 서로 다른 날짜의 일부 재택 근무제를 유지하고 있고, 같은 팀이나 부서라도 상사(line manager 또는 Director)가 해외에서 일하는 경우도 많다. 사용자의 근로시간 측정의무 및 그 방법이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은 국내 법 체계에서 이러한 재택 근무 또는 원격 근무의 경우 어떻게 실 근로시간을 측정하고 수당을 지급해야 하는지 개별 기업 입장에서는 큰 혼란과 불안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기업 현실 및 달라진 경영 환경에 대한 세밀한 검토 없이 포괄임금제를 폐지하는 것은 그 의도가 선하다고 하더라도 입법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회의가 드는 지점인 것이다.
◆근로시간 산정 가능여부 점검해야
다만, 포괄임금제의 폐지까지 나아가지 않더라도 포괄임금제 오남용 방지를 위한 대안으로 논의되는 근로시간 기록ㆍ관리 방법에 대해서는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노동계의 의견이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여 어떤 식으로든 규제가 도입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또한 당장 기업에게 중요해 보이는 것은 포괄임금제의 오남용을 근절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다.
고용노동부는 이미 연초부터 포괄임금제 오남용의 근절을 근로감독의 핵심 내용 중 하나로 천명하고 시행하고 있어 이에 대한 기업의 세밀한 준비와 철저한 내부 점검(self-compliance check)이 필요하다. 즉, 포괄임금제가 문제되는 것은 근로시간 산정이 가능함에도 실 근로시간 산정을 하지 않고 제수당을 지급하는 경우이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이 없는지 점검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고정 OT를 이용하고 있는 사업장이라면 지급된 수당과 근로시간을 비교하여 지급된 수당이 낮지 않은지도 확인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김은지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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