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5월 17일 08:22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최근 현대자동차그룹이 자회사 포디투닷에 1조원을 투자하기로 하였습니다. 2025년까지 모든 차종을 ‘소프트웨어가 중심인 자동차’로 생산하겠다고 선언하며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포디투닷은 모빌리티 서비스와 인공지능 핵심 기술을 갖춘 스타트업입니다. 대표적인 하드웨어 기업의 소프트웨어 투자라니, 여러 가지로 궁금해집니다.
사실 현대차그룹의 투자는 자동차 산업의 키워드인 전기차, 소프트웨어, 자율주행 세 가지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첫째 전기차입니다. 전기차는 전체 자동차 중 13%인 1,050만대로, 이 가운데 중국이 58%를 차지합니다. 기업으로는 테슬라가 130백만로 1위, 그 뒤를 중국의 BYD가 바짝 추격하고 있습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단순하고 진입장벽이 낮습니다. 이 때문에 수많은 기업들이 제2의 테슬라를 꿈꿉니다.
블룸버그 NEF에 따르면 전기차는 2025년 세계 시장의 25%을 차지하고, 2040년에는 신차 중 4분의 3을 차지합니다. EU와 중국은 2035년 내연기관차 신차를 전면 금지합니다. 미국은 2032년 신차 중 3분의 2가 전기차로 채워질 전망입니다. 기업들도 기민하게 대응 중입니다. 포드는 2030년, GM은 2035년에 100%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스텔란티스는 2030년 유럽산 100%, 미국산 50%을, 폭스바겐은 2033년 유럽산 100%를 목표로 합니다.
지금 전기차의 최대 장애는 가격과 주행거리입니다. 다행히 원가의 절반을 차지하는 배터리는 규모 확대와 신기술 덕분에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습니다. 주행거리는 배터리 성능 개선과 충전 인프라 확대로 개선 중입니다. 구매와 유지 비용은 이미 일부 내연기관차 수준에 육박하고 있고, 2030년쯤엔 전체 내연기관차를 추월할 전망입니다.
둘째 소프트웨어입니다. 전통 자동차 브랜드는 하드웨어로 좌우되었지만 앞으로는 소프트웨어로 차별화됩니다. 소프트웨어 결정판의 자동차는 바퀴 달린 슈퍼컴퓨터로, 공장을 떠나자마자 끊임없이 진화합니다. 리더는 중국입니다. BYD, 니오, 샤이펑 등 중국 기업들은 가라오케 기능 등 테슬라가 미처 생각 못한 다양한 디지털 라이프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맥킨지 조사에 따르면, 지금 자동차가 운전자의 욕구를 충족하는 건 8%정도에 불과합니다.
자동차는 집과 일터를 잇는 제3의 공간으로, 사람들은 이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합니다. 자동 브레이크, 차선 유지변경, 정속주행, 자동주차 등은 시작일 뿐입니다. 앞으로는 음향시스템, 영화 스크린, 비디오 게임 등 인포테인먼트가 대세입니다. 2030년엔 80%의 자동차가 인터넷으로 구동됩니다. 그러기에 소프트웨어 기술로 무장한 신흥기업들이 도전장을 내밉니다. 반면 기계공학을 기반으로 7, 8년 주기로 변하는 모델에 익숙한 기존업계는 1년이면 천지가 개벽하는 소프트웨어 세계와 동떨어져 있습니다.
완성차업계의 고민은 큽니다. 특히 유럽이 문제입니다. CEO 평균 연령이 55세로 기민하고 혁신적인 변화에 굼뜹니다. 변화에 거부하는 기업 문화도 문제입니다. 물론 절치부심하고 있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3,000명, 폭스바겐은 6,000명, GM은 8,500명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두고 있고, 스텔란티스는 2024년까지 4,500명을 확보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기존업계에서 소프트웨어로 뼈가 굵은 CEO를 둔 곳은 볼보와 페라리 단 두 곳에 불과합니다.
마지막으로 자율주행입니다. 6년 전에는 아무도 자동차 소유하지 않을 것이라며, 전통기업은 우버 등 차량호출 서비스 기업이나 기술기업에 종속될 것이라 예상되었습니다. 현실은 조금 다릅니다. 자율주행 레벨5가 완전 보편화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합니다. 운행이 특정 지역으로 제한되고 아직 원가 부담이 크기 때문입니다. 폭스바겐과 포드는 작년 말 로보택시 사업을 접었고, 웨이모(구글)도 투자자들의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기적으로는 자율주행 세상을 겨냥하며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내놓고 있습니다. 신흥세력으로는 미국의 테슬라, 크루즈(GM), 웨이모, 죽스(아마존), 중국의 바이두, 디디, 위라이드, GAC 등으로 자율주행 기술을 주도합니다. 완성차업계 역시 빅테크들과 다각도로 견제와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변신하고 있습니다.
자율주행 먹거리는 다양합니다. 부담스러운 ‘소유’ 대신 가성비 높은 ‘경험’ 때문입니다. 스텔란티스는 렌탈, 차량 공유, 주차, 재충전 일괄 패키지 모델을 제공합니다. 토요타는 육해공을 연결하는 ‘멀티모달(multi-modal)’ 운송과 결제, 차량공유, 구독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지존은 테슬라로, 금융서비스와 직접판매를 통해 수집한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가격 통제력 확보하고 있습니다. 구독 모델과 결합된 금융서비스는 특히 청년층에게 인기가 있습니다. 보험, 정비, 통행료까지 포함한 포괄 서비스도 나올 전망입니다. 중국의 링크앤코가 ‘자동차의 넷플릭스’를 자처하는 이유입니다.
이렇듯 자동차 생태계는 전기차와 소프트웨어, 자율주행만으로도 어지럽습니다. 그런데 지정학적 긴장으로 더욱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중국과 서구 기업들 모두 서로를 필요로 하며 상대방 지역에 엔지니어링과 디자인 센터를 구축해왔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 간의 관세 인상, 기술이전 제약, 공급망 리쇼어링, 자국 내 제조업 보조금 확대, 데이터 공유 제한 등으로 더욱 꼬이고 있습니다.
전통 강자와 신흥 세력 모두 변신 중입니다. 전통기업은 대량생산 역량, 강력한 브랜드, 자금력이 강점입니다. 규모를 앞세워 고정비를 분산시키고 전기차 전환을 위한 현금흐름 창출도 가능합니다. 100여년 전 포드는 철강 등 원재료, 디자인과 마케팅, 공급망 관리, 완성차 조립에 집중하며 나머지는 협력사에 맡기는 수직계열화로 산업을 재정의한 적이 있습니다. 포드의 현대 혁신판인 테슬라는 이제 배터리, 칩, 모터, 파워트레인, 좌석까지 생산합니다. 배터리 제조업체였던 BYD는 유리와 타이어를 제외한 거의 모든 것을 자체 생산합니다.
수직계열화 핵심은 배터리입니다. 베터리는 중국이 세계 시장의 60%를 장악하고, 특히 리튬, 니켈 같은 원재료 공급망을 쥐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중국 패권을 좌시할 리 없습니다. 테슬라는 광산을 직접 상대하며 선봉에 나섰습니다. 포드는 BHP(니켈), 리오틴토(리튬)와, GM은 CTR(리튬)과 글렌코어(코발트)와 연합하고, 토요타와 파나소식은 아르헨티나산 리튬 확보에 나섰습니다. 배터리업계도 연합 대상입니다. GM은 LG와, 메르세데스-벤츠는 CATL(중국)과, 폭스바겐과 볼보는 노스볼트(스웨덴)와 동맹 중입니다. 충전 인프라도 먹거리입니다. 테슬라는 슈퍼차저(Supercharger) 네트워크를 구축하였고, 폭스바겐은 일렉트리파이 아메리카를 내세웠습니다. GM은 북미에 충전소 4만 개를 건설합니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포드, 현대기아, 폭스바겐은 합작투자를 진행 중입니다.
신흥세력은 기계공학 중심의 사일로식 조직 전통, 복잡한 포트폴리오 중심의 전통기업을 비웃습니다. 규모, 경험, 브랜드, 자금력 등도 장벽이 되지 않습니다. 중국이 전형적입니다. 100년 전 미국은 100여 개 기업들이 자동차를 생산하였으나, 포드를 계기로 지금 같은 대량 생산과 소수 대규모 기업으로 재편되었습니다. 지금 중국의 전기차업체는 300여여 개에 달합니다.
100여년 만의 자동차 산업 지각변동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전통기업은 원점에서 출발하든 아니면 변신을 각오해야 합니다. 신기술은 새로운 비즈니스를 낳습니다. 이제 자동차산업은 소유 중심의 일회성 거래에서 경험 중심의 평생 거래로 전환 중입니다. 전통세력은 ‘전환’이, 신흥세력은 ‘스케일업’이 필요합니다. 아우디, BMW, 메르세데스-벤츠 같은 고급차 회사들은 살아남겠지만, 쓰바루나 르노 등 대중차는 생존이 의문시됩니다. 대형 픽업이 주력인 포드, GM, 크라이슬러는 로즈타운, 리비안, 테슬라의 도전을 각오해야 합니다.
신흥세력의 기세가 무섭습니다. 애플이 뛰어들고 있습니다. 소니는 혼다와 연합하고 있습니다. 알리바바, 화웨이, 텐센트, 샤오미도 팔을 걷어 부치고 있습니다. 아이폰 제조업체 팍스콘은 세계 전기차의 절반을 생산하여 테슬라를 누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사우디아라비아가 엄청난 자금력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루시드는 연간 15만 대 전기차 생산을 목표로 합니다. 씨어는 팍스콘과 연합하고 있습니다. 사우디는 배터리와 원재료도 눈독을 들이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지금 자동차 산업은 ‘캄브리아기 대폭발’을 앞두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작년에 토요타, 폭스바겐에 이어 3위였습니다. 한국은 이미 자동차 산업에서 혁신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뛰어난 제조와 변신 역량 때문입니다. 배터리와 반도체는 최고 수준입니다. 인터넷 인프라도 최고입니다. 전기차, 소프트웨어, 자율주행에 필요한 건 다 갖추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런 토양에서 신흥기업들의 존재감은 대단히 미미합니다.
영화 ‘존윅4’에서 신탁의 전령은 빌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의 야망은 그사람의 가치를 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나라는 정 반대로 보입니다. 가치는 엄청납니다만 야망이 너무 낮아 보입니다. 기업들의 전략과 상상력의 빈곤인지, 정부의 규제와 타성 때문인지, 아니면 지정학적 갈등 때문인지 궁금합니다. 디지털 만능의 시대라 하지만 만들 수 없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i>(본 글은 The Economist의 2023년 4월 19일자 특집 ‘The Car Industry’를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i>
*필자는 삼일회계법인과 KDB산업은행에서 근무했으며 벤처기업 등을 창업·운영하였습니다. 현재는 사모펀드 운용사 서앤컴퍼니의 공동대표로 있습니다. <슈퍼파워 중국개발은행>과 <괜찮은 결혼>을 번역했고 <디지털 국가전략: 4차산업혁명의 길>을 편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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