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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에 한번 있는 국민연금 재정계산이 실시된 올해 우리에게 주어진 국민연금의 시간표입니다.
국민 노후보장을 위해 1988년 도입된 국민연금은 처음부터 언젠가 고갈이 예정된 '시한부' 연금으로 출발했습니다. 때문에 지금까지 35년이란 긴 시간 동안 '연금개혁' 논의는 정권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졌고, 몇 차례 개혁이 이뤄지기도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출산율이 세계사에 유례 없는 0.7명대까지 떨어진 2023년 한국에서 연금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가 됐습니다. 본지는 올해 10월로 예정된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안 공개에 앞서 한국 연금제도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대안을 모색해보는 기획 시리즈 [연금개혁 파헤치기]를 장기 연재합니다.
현행 국민연금 제도 하에서 보험료율을 13% 이상 높일 경우 고소득자는 낸 보험료 보다 적은 연금을 받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재분배를 위해 고소득자는 '낸 것보다 덜 받도록' 설계된 국민연금 제도의 특징 때문으로, 연금개혁의 '한계선'이 그어진 셈이다. 고소득자의 이탈 없이 지속가능한 국민연금을 만들기 위해선 보험료율 인상과 함께 국민연금을 '낸 만큼 더 받는' 소득비례연금으로 전환시키는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보건복지부와 연금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민연금 보험료율이 13%로 인상될 때 가입자 평균소득의 두 배를 버는 고소득자의 수익비는 1 아래로 떨어진다. 수익비는 납부한 보험료에 비해 얼마나 많은 연금 급여를 받는지 나타내는 지표다. 총 보험료의 현재 가치로 총 수급액의 현재 가치를 나눠 계산한다. 납부 기간은 40년, 수급 기간은 20년으로 가정한다. 수익비가 1 보다 작으면 낸 보험료 보다 연금이 적다는 뜻이다.
현재 국민연금 가입자는 소득의 크기에 관계없이 수익비가 모두 1 보다 높다. 보험료율이 오르면 상황이 달라진다. 보험료가 늘어나도 급여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수익비가 하락하는데, 고소득자의 경우 보험료율이 13%로 인상될 경우 수익비가 1 아래로 떨어진다는 관측이다. 고소득자로서는 오히려 손해를 보는 구조인 셈이다. 고령화로 인해 연금 수령기간이 늘어나는 것을 감안하면 수익비가 1로 떨어지는 시점은 보험료율이 15%로 높아질 때로 밀려난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래 사는 만큼 더 많은 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고소득자 수익비가 1 아래로 떨어지는 보험료율 기준인 13%는 2018년 평균 기대수명이 82.7세일 때를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고, 2050년 평균 수명이 90세 정도로 높아진다고 가정하면 보험료율이 15%로 오를 때 고소득자 수익비가 1을 밑돌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소득자의 수익비가 위협받는 이런 현상은 소득재분배 기능이 있는 국민연금 구조에서 기인한다. 국민연금 급여액은 수급 직전 3년간 전체 가입자의 평균 소득(A값)과 가입자 본인의 평균 소득(B값)을 1대1 비율로 반영해 산출한다. 저소득자는 납부하는 보험료 부담이 크지 않지만, 자신의 소득 보다 많은 가입자 평균 소득이 급여액에 반영되기 때문에 수익비가 상대적으로 높다. A값의 이런 소득재분배 기능으로 인해 고소득자의 수익비는 반대로 낮을 수밖에 없다. 복지부에 따르면 B값이 A값(올해 기준 286만1091원)의 두 배인 고소득자의 수익비는 1.4다. B값이 A값의 절반인 저소득자의 수익비는 2.8로 고소득자 수익비의 두 배다.
복지부가 최근 내놓은 '2023년 예상연금월액표'를 보면 국민연금의 이런 특징이 두드러진다. 이에 따르면 올해부터 국민연금에 40년간 가입해 월 45만원을 보험료로 낸 사람은 월 157만9580원의 연금을 받게 된다. 반면 같은 기간 월 9만원을 보험료로 납부한 사람은 월 77만5860원을 가져갈 수 있다. 보험료 납부액이 5배 많은 고소득자여도 수급액 차이는 2배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문제는 고갈 위기에 빠진 국민연금을 개혁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 보험료율을 올려야 한다는 점이다. 지난 3월 발표된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의 5차 재정계산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70년 뒤에도 당해년도 연금 지급액만큼 적립금을 유지하기 위해선 최소 2025년엔 보험료율을 17.9%로 올려야 한다. 현행 9%인 보험료율을 2배는 올려야 국민연금이 지속가능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국민적 저항을 뚫고 보험료율 인상에 합의한다 해도 상한선은 고소득자의 수익비를 지킬 수 있는 12%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게 된다.
전문가들은 이런 '한계선'을 없애고 보험료율을 높이는 모수개혁에 성공하려면 두 가지 구조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먼저 A값과 같은 비율로 연금 지급액에 반영되고 있는 B값의 비중을 높여 '낸 만큼 더 많은' 연금을 주는 소득비례연금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보험료율 인상으로 낮아지는 고소득자의 수익비를 방어할 수 있게 된다.
동시에 현재 65세 이상 소득 하위 70%에 제공되는 기초연금을 재구조화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제기된다. 국민연금을 소득비례식으로 전환하고, 기초연금은 빈곤층 중심으로 대상자 수를 줄여 소득재분배 기능을 강화하는 식으로 역할 분담을 해야한다는 주장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국민연금 기금의 재정 안정화를 위해선 보험료를 올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수익비 문제에 대해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수익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보험료를 더 낸 사람이 연금을 더 받는 식으로 비례성을 높이는 구조개혁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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