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국내 창업 기업은 전년보다 7.1% 줄었고, 특히 제조업에서의 창업이 13.3% 감소했다. 벤처 투자는 전년 대비 11.9% 줄어들었다. 미래 먹거리로 거론되는 바이오·의료 분야 투자는 상장 바이오 기업의 주가 하락, 기술특례상장 심사 강화 등으로 전년 대비 34.1% 감소했다.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올해 1분기 실적 확인이 가능한 309개 대기업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작년 동기 대비 48.8%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까지 무역수지 적자는 252억4000만달러로 작년 동기(68억7000만달러) 대비 무려 267% 증가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한국의 무역수지 흑자 1위국이던 중국이 3월 월간, 연간 기준 통틀어 처음으로 한국의 최대 무역 적자국이 됐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의 무역 구조가 점차 자립·내수형으로 변모하면서 중간재 중심인 한국과 수출 구조가 비슷해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혁신을 위한 투입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통해 빠른 성장을 이뤘다. 한국은 여전히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 연구개발(R&D) 투자 비중 세계 2위, 인구당 R&D 인력 세계 3위 국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은 세계 경제성장률을 밑도는 1.6% 수준이고, 1인당 국민소득은 20년 만에 대만에 역전당했다. 이것은 혁신을 위한 투입이 그만큼의 성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지금은 그간의 국가 성장 전략을 점검하고, 한정된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촘촘한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특허 데이터는 ‘정보의 공개 가능성’ ‘신뢰성’ 그리고 ‘정형성’이 있다는 점에서 데이터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 세계적으로 매년 약 300만 건 이상의 특허가 출원되면서 현재 약 5억3000만 건 이상의 특허 데이터가 누적돼 있다. ‘특허 빅데이터’의 시대다.
상표 데이터도 최근 데이터로서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상표는 주로 신제품이나 새로운 서비스에 대해 출원되므로 해당 산업의 비즈니스 트렌드 예측에 유용하다. 특허, 상표 등 지식재산 데이터를 활용하면 산업 패턴과 동향을 파악할 수 있고, 핵심 R&D 전략이나 기업의 위기 신호를 감지할 수도 있다.
특허 데이터의 쓰임새는 무궁무진해 국가 정책은 물론 기업의 비즈니스 전략에도 활용할 수 있다. 미국 특허청은 특허 데이터 분석 전담조직에서 특허 정책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하고, 상무부 차관에게 상시적으로 정책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유럽 특허청도 특허가 경제 및 고용에 미치는 영향, 특허법원 설립의 경제적 영향 등을 분석한다. 지식재산 확산지수를 활용해 유럽 지식재산 집약산업의 경기 회복과 하락 추세를 예측하고, 이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의 특허청도 관련 정책 수립에 앞서 그 경제적 영향에 대한 실증분석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특허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정책 결정이나 산업 계획 수립, 기업 경영 등에 활용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하는 특허 내비게이션 제도를 2018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지난 3월 국내 산업재산권 출원 동향 및 주요 특징을 분석한 특허통계센터의 첫 보고서가 발표됐다. 이 보고서는 ‘2022년 우리나라 특허, 디자인, 상표출원 변화의 특징과 변동 원인’을 분석했다. 또 세부 기술의 변화 양상을 분석해 국내 기술 트렌드 변화와 향후 방향을 예측했다. 분석 결과를 보면, 세계 경제성장률 증가와 함께 산업재산 출원 건수가 전반적으로 증가한 2021년과 달리 2022년은 주요국 출원이 정체 또는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도 특허와 상표출원이 각각 0.2%, 9.4% 감소했는데 여기에는 대내외 경기 불확실성 확대로 인한 창업 감소(2022년 전체 -7.1%, 제조업 -13.3%)가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상표출원은 특허와는 달리 중소기업과 개인이 약 90%를 차지하고 있어 경기 변동에 민감한 특징을 보인다.
이 보고서는 권리별, 분야별 특허·상표 트렌드를 분석하고 시사점도 제시했다. 먼저 최근 특허 출원 건수의 정체는 신규 출원인이 급격히 감소한 데 원인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특허 출원인 중 그해 처음으로 특허를 출원한 신규 출원인 비중은 매년 43~44% 수준으로 유지돼 왔지만, 2021년부터 급격히 감소해 지난해 39.8%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최근 한국 기술 혁신에 있어서 신규 주체의 공급이 감소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연구개발(R&D) 예산이 계속적으로 증가하는데도 특허 출원은 그만큼 늘지 않아 ‘특허 생산성’이 하락하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지난해 특허 출원이 증가한 산업의 기술을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컴퓨터 프로그래밍 및 정보서비스업에서 ‘AI 딥러닝 이미지 처리’ 관련 특허가 급증(직전 3년 대비 422% 증가)했고, 이와 같은 증가세는 국내 중소기업이 주도한 것으로 분석됐다. 1차전지 및 축전지 제조업에서는 2차전지 관련 특허가 직전 3년 대비 52.8% 증가했고, 이는 대기업 주도로 이뤄졌다. 의료용 물질 및 의약품 제조업에서는 외국인 및 중소기업 주도로 면역 글로불린(항체) 등 백신 관련 특허 출원이 증가했다. 이 밖에 드론 및 자율주행, 반도체, 증강현실, 유전체 분석 및 진단, 전기자동차 관련 특허가 급증해 향후에도 4차 산업혁명 및 첨단산업 기술을 중심으로 특허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지난해 상표 출원 동향을 살펴보면, 대기업 출원은 소폭 증가(1.2%)한 반면 중소기업(-12.8%)과 개인(-9.1%)의 상표 출원은 큰 폭으로 감소했다. 팬데믹 특수 효과 소실 및 국내외 경기 불확실성 확대의 영향으로 신규 창업이 줄어드는 등 시장이 전반적으로 침체하면서 상표 출원이 감소한 것으로 해석된다.
보고서에서는 또 코로나19 회복기에 접어든 지난해 상표 출원 활동을 코로나19 기간(2020~2021년)과 비교했다. 분석 결과 코로나19 기간에 상표 출원이 급증했던 의약·진단·위생 관련 분야와 비대면 의·식(衣·食) 관련 분야에서 지난해 출원이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런 현상은 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최근 유럽 특허청(EUIPO)에 따르면 유럽에서도 코로나19 특수 분야인 의약·진단·위생, 비대면 의·식 및 여가 관련 분야를 중심으로 지난해 상표 출원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코로나19 영향을 보다 장기적으로 받는 교육업, 의료업, 과학·기술 서비스업 분야는 상표 출원 규모가 계속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보고서는 코로나19로 촉발된 사회, 환경 변화 속에서 기업과 개인이 신규 사업 기회를 창출하고 시장 진입을 위한 전략적 도구로 상표를 활용하고 있다고 본다.
이 밖에 특허통계센터는 기술 분야별 미래 특허 출원량을 예측하고, 특허·상표 등 산업재산이 집중적으로 출원되고 있는 산업의 경제적 영향과 관련 정책의 파급 효과를 분석한 연례보고서를 올해부터 매년 발간할 예정이다.
빅데이터 분석의 궁극적인 목표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예측 정확성을 높이는 것이다. 특허데이터를 R&D, 기업, 무역, 산업 등 다양한 이종 데이터와 계속 연계해 나간다면 예측 결과의 활용성이 극대화될 것이다. 예를 들어, 특허 기술을 보유한 기업의 도산 확률을 예측함으로써 지식재산(IP) 금융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고, 미활용 특허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대학과 공공연구기관이 보유한 특허의 사업화 가능성을 예측함으로써 공공부문 특허의 활용률을 높일 수 있다. 특허의 경제성을 예측함으로써 특허 가치 평가의 신뢰성도 높일 수 있다.
손승우 한국지식재산연구원장
■ 손승우 원장은
손승우 원장은 1972년생으로 현재 한국지식재산연구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를 지냈다.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법·지식재산권법 박사학위를 받았고, 단국대 산학협력단장과 창업지원단장, 한국지적재산권경상학회장,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 방문교수 등을 역임했다. 최근 ‘특허데이터 기반의 국가정책 지원모델’ 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다. <지식재산법의 이해>(2023년), <데이터와 법>(2021년, 공저), <공정경제와 지식재산>(2019년)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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