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법원은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연령 차별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한국농어촌공사 삼성화재 KT를 상대로 한 임금피크제 소송에서 모두 기업이 승소했다. 이런 판결의 바탕엔 ‘정년 연장 자체가 임금 삭감에 대한 보상’이란 판단이 깔려 있었다.
이번에 패소한 KB신용정보는 임금 삭감폭이 과도한 점이 문제가 됐다. 이 회사는 2016년 2월 노조와 체결한 단체협약에 따라 만 55세부터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대신 정년을 만 58세에서 60세로 연장했다. 대상 직원은 임금피크제를 적용받기 직전 연도 연봉을 기준으로 임금이 45~70%로 줄어든다. 일부 직원은 임금피크제 적용 첫해부터 연봉이 전년 대비 45% 수준으로 깎일 수 있는 것이다.
임금피크제를 적용받으면 아무리 성과를 많이 내도 임금피크제를 적용하지 않았을 때보다 연봉을 더 받기 어렵다. 임금피크제가 없다면 KB신용정보 직원은 만 55세 이후 원래 정년인 58세까지 3년간 기존 연봉의 300%(3년치)를 받을 수 있었다. 임금피크제 도입 후엔 성과평가에서 매년 최고 등급을 받아야 이 수준의 연봉을 받는 게 가능하다. 구체적으로 마케팅직은 5년간 성과평가에서 최고 등급(S) 한 번 이상 또는 두 번째 등급(A+) 두 번 이상, 행정직은 5년 내내 S등급을 받아야 기존 연봉의 300%를 받을 수 있다. 만약 이 기간 매년 최저 등급을 받는다면 기존 연봉의 225%(45%×5년)만 받는다. 재판부는 “근무기간이 2년 더 늘었음에도 임금총액은 오히려 삭감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임금피크제 소송에서 승소한 기업들은 임금 삭감폭이 크지 않다. 예컨대 KT는 정년을 만 58세에서 60세로 연장하면서 임금피크제 적용 시점부터 정년까지 매년 10%포인트씩 임금이 줄어든다. 삼성화재도 정년을 만 55세에서 60세로 변경하면서 만 56세부터 4년에 걸쳐 연봉이 기존의 90%에서 60%로 차례로 낮아지도록 임금피크제를 설계했다.
하지만 이번 KB신용정보 관련 판결로 정년유지형은 물론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도 상황에 따라선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기업들은 다시 혼란에 빠졌다. 한 노동전문 변호사는 “정년 연장이냐 유지냐에 관계없이 임금 삭감 수준이 소송의 승패를 가르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곽용희/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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