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간호법 제정안에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간호사의 처우 개선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이 법안이 의료계 갈등을 부추겨 국민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윤 대통령이 취임 후 법률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지난달 4일 양곡관리법에 이어 두 번째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간호법 제정안 재의요구안을 심의·의결한 뒤 이를 재가했다. 간호법은 기존 의료법에서 간호 관련 내용을 따로 떼어낸 법이다. 간호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간호 인력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하지만 의사 단체는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의료기관에서 지역사회로 넓힌 조항이 포함돼 향후 간호사가 단독 개원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간호조무사의 학력을 고졸로 제한한 내용이 담겨 간호조무사들도 반발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의료 직역 간 갈등을 부추긴다며 처리에 반대했지만, 다수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27일 이 법을 본회의에서 단독으로 처리했다.
윤 대통령은 “국민 건강은 다양한 의료 전문 직역의 협업에 의해 제대로 지킬 수 있는 것”이라며 “이번 간호법안은 이와 같은 유관 직역 간에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간호 업무의 탈의료기관화는 국민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다”며 “이러한 사회적 갈등과 불안이 직역 간 충분한 협의와 국회의 충분한 숙의 과정에서 해소되지 못한 점이 많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건강이고, 건강이 어떤 정책보다 우선시돼야 한다”며 “간호법 제정안이 시행된다면 우리나라 의료체계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간호사들의 요구에 귀를 막은 게 아니다”며 “여야가 의료법 체계를 전반적으로 손질하는 방향으로 논의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대한간호협회는 강력 반발하며 국회에서 간호법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간호법 제정안에 반대하며 17일 총파업을 예고한 의사·간호조무사 단체 등은 국회 재의결 때까지 파업을 유보하기로 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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