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온라인 리듬 게임의 원조, 오투잼을 기억하시나요? 빠르게 떨어지는 블록을 재빠르게 받아치는 오투잼은 200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추억과도 같은 이름입니다. 게임이 출시된 지도 어느덧 20년이 넘었습니다. 오투잼을 만든 송영일 메타캠프 대표는 어느새 희끗희끗한 머리를 지닌 50대가 됐습니다. 하지만 본인을 “아직 30대”라고 소개하는 그는 지난 20년 연쇄 창업가로 살아왔습니다. “어떤 날엔 지갑에 돈 한 푼 없었다”면서도 “사업을 놓을 생각은 없다”는 그를 한경 긱스(Geeks)가 만나,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면서도 창업을 이어가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메타캠프 가상 공간에 세워진 학교가 64개, 가입한 ‘코로나 학번’이 12만 명을 넘었습니다. 요즘은 이론 수업인데 왜 비대면 강의가 아니냐고 학생이 먼저 말한다네요.”
‘메타버스란 키워드가 사장된 것 아닌가’는 질문에 송영일 메타캠프 대표가 이같이 반박했다. 코로나19가 확산 중이던 2020년 10월 설립된 메타캠프는 국내 최초 대학 전용 메타버스 플랫폼을 만든 업체다. ‘가상 대학’을 세워주고 학생이 오가도록 한 것이 시작이다. 그는 적어도 교육 현장에서만큼은 메타버스의 역할이 확고하다고 주장했다. “내 분신이 캠퍼스를 누비고, 수업을 듣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또 다른 몰입감을 제공합니다.” 전문대를 중심으로 사업을 늘린 메타캠프는 약 130개 상당의 국내 전문대 중 절반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실습은 현장 수업, 이론은 ‘메타버스 수업’이란 공식이 굳어지고 있다”며 “내년부터 미국 1500개 전문대학에 대한 공략도 본격화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청담 최초 클럽 만든 ‘오투잼’의 아버지
호주에서 대학 시절을 보냈던 그는 원래 호텔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노보텔 엠베서더가 국내 영업을 막 시작하던 1994년도에 초기 멤버로 합류했다. 얼마간 다니다가 지인이 운영하던 인테리어 회사로 이직했다. 이때의 경험이 창업의 거름이 됐다.당시 강남엔 가로수길과 로데오 거리가 막 형성되던 때였다. 이곳저곳 세련된 카페가 생겨나며 현금이 쌓였다. 이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송 대표가 회사에 제안했다. “인테리어를 우리가 직접 하면 싸니까, 청담동 최초의 EDM 클럽을 만들었어요. ‘지직스’라고, 우리 세대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클럽은 성행했지만, 때마침 터진 IMF 때문에 공사 당시 미리 받아온 건설자재 값이 급등했다. 오픈해놓고도 클럽을 팔 때는 속이 쓰렸다. 이후엔 홈페이지 만드는 기술을 배워 잭스키스, 핑클 등 가수들의 공식 홈페이지를 만들어주며 지냈다. 음악과는 더 밀접하게 지냈고, 그러다 구상한 것이 2002년 만들어진 ‘오투잼’이다.
떨어지는 블록을 맞추며 노래를 즐기는 리듬게임은 초창기 최고 인기를 구가했다. 한국은 물론 중국에서도 히트를 하며 사용자가 5000만 명까지 늘었다. 송 대표는 “다들 사업을 할 땐 희망을 갖고 바라는 바가 있지만, 그렇게 잘 될 줄은 몰랐다”면서도 “개발 당시에는 스트레스를 받아 심근경색으로 병원에 실려 간 적도 있다”고 했다. 갑작스런 성공이 오고 나니, 또 다른 실패도 찾아왔다. “나이가 어릴 때다 보니 권리관계 같은 것에 밝지 못했어요. 게임이 잘되니 투자사와 지분 분쟁이 발생했는데, 결과적으로 내쫓기게 됐죠.” 투자사와의 갈등에 충격을 받은 그는 태국행을 택했다. 마침 슈팅 게임 ‘포트리스’가 태국 진출을 앞두고 있어, 이를 퍼블리싱하는 엔플렉스의 태국지사 부사장으로 출국했다. 싸이월드 대만의 마케팅 이사직도 거쳤다.
굶으면서 ‘또 창업’…VR 콘텐츠로 도약
시간은 흘렀지만 아직도 다른 서비스의 성공 소식을 들으면 엉덩이가 들썩였다. 한국에서 댄스 온라인 게임 ‘오디션’이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2006년 다시 게임회사를 창업했다. 동종 장르의 ‘댄스피버’ 게임을 이때 만들었다. 당시에도 순탄한 길은 없었다. 퍼블리셔 역할을 했던 SBS콘텐츠허브가 돌연 게임사업을 접기로 하면서, 이미 ‘손이 타버린’ 게임을 서비스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당시까진 PC 버전이 중심이라, 모바일 게임으로의 전환을 준비하던 게임업계의 관심이 적기도 했다. 회사는 2012년 망했다.그는 무일푼이 됐다. 신발에 구멍이 나서 빗물이 들어오고, 집에는 먹을 것이 떨어졌다.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좋아하는 음악으로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아무것도 안 하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라고 했다. 다행히 팟캐스트가 ‘팟빵’ 플랫폼에서 1위를 하며 정신건강이 많이 회복됐다. 창업가를 지원하는 ‘디캠프’에 매일 나가 사업 구상을 다시 할 정도가 됐다. 당시에 창업 인생의 두 번째 방향을 제시해준 인물도 만났다. 메타의 가상현실(VR) 전담 조직이 된 스타트업 오큘러스의 서동일 창업자와 교류한 것이다.
송 대표는 “당시 서 창업자를 매주 보면서 VR에 대해 두 시간씩 떠들었다”며 “VR은 게임 하던 사람들에게 꿈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이 VR에 시큰둥했던 터라, 관심사가 같던 둘은 죽이 잘 맞았다. 그러다 2014년 2월이 됐다. “서 창업자가 ‘대표님, 포기하지 말고 한번 해보세요’ 하고는 VR 기기 하나를 선물해줬습니다. 갑자기 무슨 소린가 했더니, 한 달 있다가 메타가 오큘러스를 2조1500억원에 인수했다고 뉴스가 나오는 겁니다. 다시 ‘이거다’ 싶었습니다.” 2015년에 다시 VR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를 차렸다.
세 번째 회사였던 서틴스플로어는 나름대로 순항했다. 코카콜라와 에버랜드의 VR 콘텐츠를 만들어 주며 덩치를 키웠다. 2016년엔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에서 삼성전자의 ‘VR 영화관’을 대신 제작해 5만 3000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으기도 했다. SK텔레콤과 협력해 가수 ‘설현’과 실감형 데이트를 하는 콘텐츠를 만들어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회사가 어느 정도 안착하자, 이번엔 분당서울대병원의 전상훈 교수와 협력해 의료 교육 VR 콘텐츠를 만드는 업체를 창업하기도 했다.
누적 수업 6000개…“메타버스 생존 증명할 것”
자연히 송 대표 주변엔 VR 콘텐츠 제작 경험을 지닌 인력이 다수 포진했다. 현재 메타캠프의 기술 고문으로 합류한 김준호 동서울대 전기정보제어학과 교수가 새로운 창업을 제안한 이유다. 송 대표는 “2020년 4월 동서울대에서 VR 기기로 접속하는 메타버스 캠퍼스 수업을 만들어 진행했는데 반응이 좋았다”며 “이미 개발진의 경력이 쌓인 상태라 구현에 어려움이 없었다”고 했다. 결국 2020년 10월 메타캠프를 창업하고, 이듬해인 2월 전문대 연합조직인 한국직업고등교육학회, 아마존웹서비스(AWS)와 함께 ‘메타버시티(메타버스와 대학의 합성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사업을 안착시켰다. 코로나19 기간 수업할 방법을 찾던 전문대들과 합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현재 메타캠프 플랫폼으로 수업을 연 전문대는 64개, 열린 수업의 수는 6054개다. 누적 수업 시간은 4만 시간을 넘어섰다. ‘전기 캐드 이론’ ‘치기공 이론’ ‘헤어커트 이론’ ‘자동차 공학’ 등 대부분의 이론 수업이 메타캠프의 플랫폼에서 진행된다. 메타캠프의 플랫폼은 ‘데어’라고 불리는데, 가상 공간에 각 전문대의 건물을 그대로 구현해 놓은 것이 특징이다. 학생들은 게임을 즐기는 것처럼 가상의 아바타로 캠퍼스를 누비며, 수업에 참여할 수 있다.
송 대표의 다음 목표는 해외 진출이다. 그는 “지난 2월 미국의 위트 대학과 협업을 시작했다”며 “다음 달부터 전문대 학생들이 위트 대학의 영어 수업을 들을 수 있는 형태로 파트너십을 시작한다”고 했다. 내년도엔 위트 대학의 메타버스 캠퍼스를 본격적으로 꾸리고, 1500개에 달하는 미국 전문대를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목표 매출액은 30억원이다. 송 대표는 “인공지능(AI) 기술의 발달로 3차원(3D) 모델링 작업이 쉬워져, 메타버스 플랫폼이 또 한 번의 도약 계기를 맞고 있다”며 “메타버스는 코로나19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필요한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메타캠프는 최근 중소벤처기업부 기술창업 지원 프로그램인 ‘TIPS(팁스)’에 선정되기도 했다.
연쇄 창업의 이유에 대해, 그는 아직도 자신이 맞다고 생각한 아이템을 세상에 증명하고 싶다고 했다. “월급 받는 생활 하고싶다는 생각을 왜 안해봤겠습니까? 그래도, 아직도 나이가 30대 같아요.” 그의 창업 소재는 항상 주변의 반대에 처해왔지만, 결국에는 소기의 성과를 이룬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송 대표는 “거창한 마음으로 이 세상의 교육을 바꿔내고 싶다는 마음은 없다”면서도 “메타버스가 다시 불타오를 것이란 전망을 직접 증명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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