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서울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6번 출구 앞에서 만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건설노조의 한 조합원은 “1박2일 동안 집회에 참여하느라 일을 못 해 50만원을 날리게 생겼다”며 이같이 토로했다. 경기 고양에서 부팀장급으로 일하고 있다는 다른 노조원은 “노숙 집회를 하라고 해서 나왔는데 이 밤중에 뭘 하라는 건지 얘기가 없다”며 “딱히 할 일이 없어 술판을 벌이는 모습이 민망하다”고 말했다.
서울 광화문과 청계천 일대를 장악한 민주노총의 대규모 노숙 집회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인근 상인과 시민들은 민주노총이 지난 16일 오후부터 이날 아침까지 술판을 벌이고 고성방가를 이어간 탓에 출퇴근 길에 큰 불편을 겪었다. 서울경찰청 112 상황실엔 소음 관련 신고만 80여 건 접수됐다. 서울시는 노숙 집회로 서울광장 등을 무단 점거한 건설노조에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을 근거로 변상금을 부과하고 형사고발할 것이라고 17일 발표했다.
준비 없이 갑자기 이뤄진 노숙 집회로 서울 세종대로 덕수궁 앞은 수천 명이 길바닥에서 자는 ‘난민촌’이나 다름없었다. 대부분 돗자리와 신문지 등으로 새벽 찬바람을 피했다. 총동원령 탓에 생계를 포기하고 참여한 노조원 역시 불만이 상당했다. 한 노조원은 “노숙자도 아니고 여기서 왜 잠을 자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다른 노조원은 “집회에 참여하지 않으면 당장 내일부터 일을 주지 않을 게 뻔하다”며 “노조 간부 자신들의 힘을 보여주기 위한 정치 집회에 동원됐다”고 했다.
2021년 6월 이후 처음 열린 서울 도심 대규모 노숙 집회는 결국 술판으로 변질됐다. 오후 11시에 방문한 덕수궁 인근 편의점 여섯 곳 중 다섯 곳의 냉장고 주류 칸은 텅 비어 있었다.
봄밤을 맞아 덕수궁 돌담길을 찾은 시민들은 노조원이 내뿜는 담배 연기에 발길을 돌렸다. 시민과 노조원들이 언성을 높이며 서로 싸우는 모습도 곳곳에서 보였다.
민주노총은 건설노조 간부였던 양회동 씨의 분신을 추모한다는 명분으로 이번 집회를 열었다. 하지만 노조원 사이에선 추모의 목소리보다 노숙 집회와 간부에 대한 성토만 이어졌다. 한 노동 전문가는 “노조원의 죽음을 무기로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을 막으려는 정치 집회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5월의 봄날, 한순간에 노숙촌이 된 덕수궁 돌담길을 보면서 노조 집행부는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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