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은행보다 유연하게 대출해주는 사모펀드 운용사로 대거 옮겨갈 것으로 예상합니다.”
17일 한국경제신문사 주최로 서울 여의도동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ASK 2023 글로벌 대체투자 콘퍼런스’에서 전문가들은 사모대출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금리 인상과 인플레이션, 주식과 채권 가격 급락 등으로 시장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전통 금융회사인 은행마저 흔들리면서 ‘금융 권력’이 사모펀드 운용사로 이동할 것으로 전망했다.
사모대출은 연기금과 국부펀드 등 기관 자금을 모아 사모펀드 운용사가 기업에 제공하는 대출이다. 기업의 경영권이나 지분을 취득하는 사모주식(private equity) 투자와 달리 운용사가 은행처럼 대출기관 역할을 한다.
참석자들은 글로벌 경기가 조만간 침체기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했다. 기조연설을 맡은 댄 아이버슨 핌코그룹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정부 부채가 급증하고 코로나 팬데믹 영향이 여전하다”며 “향후 6개월에서 12개월 내 세계 경제가 얕은 침체기에 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계 사모투자전문회사 먼로캐피털의 지아 우딘 사장은 올 1분기를 ‘폭풍 전 고요’로 평가했다. 그는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과 긴축정책 영향이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과소 평가됐다”며 “기업의 펀더멘털은 강하지만 거시경제 상황은 밝지 않다”고 했다. 우딘 사장은 “물가 인상은 일시적인 게 아니다”며 “타이트한 노동시장은 경기 연착륙을 어렵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가 둔화할수록 대체투자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아이버슨 CIO는 “지난 15년간 투자자들은 저금리 시대에 높은 수익을 내기 위해 대체투자로 눈을 돌렸지만 이제는 경기 둔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체투자에서 기회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거용 부동산과 멀티패밀리, 물류 및 데이터센터 등에 집중해야 한다”며 “이런 자산은 금리가 연 5%대인 상황에서도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사모대출 시장은 올해 새로운 전기를 맞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레고리 로빈스 골럽캐피털 부회장은 “전통적으로 자금조달 역할을 하는 지역 은행이 위기를 맞으면서 시중 유동성이 감소했고 과거 제도권을 이용한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대출 서비스를 제공할 기회가 많아졌다”며 “북미와 유럽 시장을 중심으로 사모대출과 사모주식 시장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사모대출은 부도율이 낮고 회수율이 높아 경기 하방 방어성을 갖고 있어 경기 침체기 좋은 투자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우딘 사장은 “미국 규제당국의 은행 대출 심사 강화도 사모대출 시장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기업들은 은행보다 유연하고 개인화된 대출을 제공하는 사모펀드 운용사로 옮겨갈 것”이라고 했다.
골럽캐피털에 따르면 세계 사모대출 시장 규모는 지난해 1조2490억달러로, 최근 5년 새 두 배 이상 증가했다. 2027년에는 2조3000억달러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사모펀드 운용사의 투자 여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들 운용사의 미소진자금(드라이 파우더)은 지난해 기준 1조9030억달러로, 2017년 1조410억달러에서 5년 새 두 배 가까이 커졌다.
유럽계 운용사인 팸벌튼애셋매니지먼트의 사이먼 드레이크 브록먼 대표는 “유럽 시장에서도 사모대출펀드와 사모신용펀드의 투자 기회가 열릴 것”이라며 “경제 회복 속도를 감안하면 유럽이 미국보다 더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사모신용펀드는 대출을 비롯해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 등 신용 관련 상품에 투자하는 펀드다.
전예진/장현주 기자 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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