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세 이노디자인 대표(사진)의 자기소개법은 이렇다. 자기 이름보다 자신이 디자인한 제품 이름을 먼저 댄다. 그만큼 유명한 제품을 많이 만들었다는 자부심에서다. 그럴 만하다. MP3플레이어의 대명사였던 ‘아이리버’와 삼성 애니콜 ‘가로본능’폰, 라네즈의 슬라이딩형 콤팩트 ‘쿠션’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때 김연아가 불을 붙인 ‘달항아리’ 성화대와 성화봉도 김 대표의 작품이다.
그런 그가 올초 신제품을 들고 미국행(行) 비행기에 오르자, 모두들 목적지를 세계 최대 IT(정보기술)·가전 전시회 CES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찾은 곳은 세계 최대 골프용품 박람회인 ‘미국프로골프(PGA) 쇼’가 열리는 플로리다주 올랜도였다. 그가 박람회에 가지고 온 건 그동안 주로 디자인한 소형 제품이 아니라 1인승 골프카트였다.
1인승 골프카트는 5인승이 주류인 국내는 물론 2인승 중심인 미국에서도 웬만해선 보기 힘든 제품. ‘이노(INNO)-F1’이 행사 조직위원회가 뽑은 ‘올해의 베스트 골프카 톱5’에 선정되는 등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유다. 이 제품은 미국 CNBC의 골프채널을 통해 미국 전역에 소개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최근 기자와 만나 “처음 1인승 골프카트 개발 계획을 주변에 얘기했을 때 반응은 ‘그게 팔리겠느냐’였다”며 “하지만 PGA 쇼에서 실물을 본 사람들은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 시장성은 충분하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노-F1 이름 뒤에 붙은 F1은 ‘한 명을 위한’이란 뜻의 ‘For one’이다. 1인용이란 걸 강조하기 위해 붙였다. 이노-F1은 평소 골프를 즐기는 김 대표의 평범한 질문 덕분에 태어날 수 있었다. 바로 ‘1인용 골프 카트가 있으면 무게가 가벼워 페어웨이에 들어가도 잔디가 상하지 않을 텐데, 왜 아무도 안 만들까’였다.
김 대표는 “평소 100명 중 10명만 만족하면 대성공이란 생각으로 디자인해왔다”며 “이번에도 수많은 아마추어 골퍼 중 10%의 마음에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개발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이노-F1의 최대 장점은 무게가 가볍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2인승 카트(450㎏)의 절반 정도인 249㎏밖에 안 나간다. 페어웨이를 돌아다녀도 잔디 손상이 적으니, 경기 시간도 단축할 수 있다. 김 대표는 “5인승 카트는 여러 사람이 타고 내리기 때문에 파4홀에서 5번 정도 멈춰야 한다”며 “하지만 골퍼 4명이 각자 이노-F1을 운전할 경우 각자 두세 번 정도만 멈추면 되는 만큼 라운드 시간이 40분 정도 단축될 것”이라고 했다. 골퍼는 시간을 아끼고, 골프장은 회전율을 높여 수익을 늘릴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1인승 골프카트가 대중화되기엔 걸림돌이 적지 않다. 캐디가 운전하는 카트 안에서 동반자와 대화를 나누는 한국의 골프문화와 맞지 않다는 게 첫 번째다. 무게가 가볍다고 골프장들이 페어웨이 진입을 허용할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가격도 비싼 편이다. 이노-F1의 출시가는 7000달러(약 930만원) 수준으로, 한국의 4인승 제품(1500만원)보다 1인당 단가가 훨씬 높다.
이런 우려에 대해 김 대표는 “골프문화가 달라지고 있다”고 반박한다. 골프보다 친교가 중심인 ‘비즈니스 골프’는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반면 골프 자체를 즐기는 ‘취미 골프’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 대표는 “골프에 진심인 골퍼들이 늘어날수록 골프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1인용 카트 수요가 확대될 것”이라며 “노캐디 골프장이 확산하는 것도 1인용 카트 시장에는 호재”라고 강조했다.
이런 이유에서 국내에서도 몇몇 골프장이 이노-F1 도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조만간 한국에서도 ‘셀프 골프’ 시대가 열릴 것”이라며 “이노-F1은 골프산업의 ‘트렌드세터’ 및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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