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보당국이 서울 잠실동 한강변에서 운영되던 중식당 동방명주(東方明珠)가 사실상 중국 정부의 ‘비밀경찰’ 역할을 했다고 잠정 결론냈다. 한국 정부는 그러나 마땅한 처벌 규정이 없는 데다 중국과의 외교마찰이 발생할 수 있어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동방명주의 실질적 소유자인 왕하이쥔 개인에 대한 처벌로 중국 정부에 ‘우회성 경고’를 보내는 방안이 유력하다는 관측이다.
정보당국은 동방명주가 중국 대사관이 주재하는 각종 행사를 도맡아 개최한 점도 중국 정부 관련성을 의심할 수 있는 대목으로 봤다. 한국 내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각종 시상식도 동방명주가 전담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만 아니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식당 외에 ‘귀빈(VIP)전용관’을 별도로 운영했다. 동방명주의 VIP전용관이 중국 고위 관계자들의 아지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국내 주요 인사들도 VIP전용관을 이용했는데, 정황상 이곳에서 도·감청이 이뤄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한 관계자는 “중국 주요 인사를 만날 때 주로 동방명주로 초대받았다”며 “음식 맛이 좋지 않다는 세간의 평가와는 전혀 다른 높은 수준의 식사를 접하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국제인권단체 ‘세이프가드 디펜더스’의 라우라 아르트 국장은 과거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해외 각 지역에 중국 경찰과 연결된 지부를 관련국의 허가 없이 설립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이 지부를 통해 수많은 사람이 중국으로 강제 송환되는 일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동방명주 실소유주인 왕하이쥔은 의혹이 불거질 당시 기자회견을 열어 “질병 등 돌발 상황으로 죽거나 다친 중국인 10여 명의 귀국을 지원했다”며 “반중 인사의 강제 송환 의혹은 사실이 아니며 그럴 권한도 능력도 없다”고 반박했다.
한국이 직접적으로 중국 정부에 비밀경찰 사건을 문제 삼지 않는 것은 현행 법체계와도 관련이 있다. 비밀경찰 활동이 사실이더라도 현행법상 형법 외에 적용할 처벌 조항이 마땅치 않아서다. 현행 방첩업무 규정은 대통령령으로 정해 처벌 규정이 별도로 없고, 간첩죄에서 규정하는 간첩활동 대상 역시 ‘적국(북한)’에 한정돼 있다.
처벌 수위를 높일 경우 중국이 보복 조치에 나설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동방명주 처벌에 따른 실익은 크지 않은 반면 한·중 관계 경색으로 인한 피해는 클 수 있다는 점에서다.
사건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당장 중국에 거주 중인 민간인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왕하이쥔에 대한 처벌을 통해 중국에 우회성 경고를 하는 선에서 사건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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