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없어 사과·포도·딸기 농사 다 망칠 판"…애그플레이션 공포

입력 2023-05-18 18:42   수정 2023-05-26 19:08


불과 1년 남짓 동안 한반도에서 꿀벌 340억 마리가 사라졌다. 소멸에 가까운 실종에 당장 직격탄을 맞은 곳은 과수농가다. 꽃들이 수분하지 못해 올해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 것을 우려하고 있다. ‘꿀벌 실종’으로 농산물 가격이 뛰는 ‘애그플레이션’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과수업계 “꽃은 피는데 벌이 없어”
18일 과수업계에 따르면 꿀벌 한 통을 보름간 빌려 수분하는 비용은 10만원으로 지난해보다 30% 가까이 올랐다. 그나마도 질 좋은 벌을 구하기 힘들어 인공수분하는 농가도 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경우 열매가 제대로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분이 안 된 상태로 사과가 열리면 씨방이 없어 끝까지 자라지 못하고 떨어지는 게 많다. 딸기도 수분 없이 열매가 달리면 원래 모양이 아니라 찌그러진 형태로 자란다. 농민들은 이를 ‘꼼보가 났다’고 한다. 당연히 상품성은 떨어진다.

사과 포도 딸기 복숭아 등 주요 과일의 수확량이 모두 감소하면 꿀벌 실종 사건이 ‘농산물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농산물 생산에서 꿀벌이 꽃가루를 전해 농작물이 결실을 보게 하는 화분매개의 경제적 가치는 국내에서 5조8000억~6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전남 담양에서 딸기 농사를 짓는 한 농부는 “찌그러진 딸기가 지난해보다 두 배 늘어 생산량이 20~30% 줄어들 것 같다”며 “농사는 환경의 영향이 큰데 해마다 심각해지는 상황이 몸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2000년대 중반부터 보고된 꿀벌군집붕괴현상(CCD·Colony Collapse Disorder)은 지난해 봄 처음으로 한국에 알려졌다. 정부는 단순한 월동 폐사로 진단했지만 농민들은 평균적인 월동 폐사 비율(20%)을 크게 넘어서는 점, 여름에도 꿀벌이 사라지는 점 등을 들어 CCD라고 주장하고 있다.

CCD든 월동 폐사든 수많은 꿀벌이 국내에서 단기간에 갑자기 사라지는 것은 최근 1~2년 사이 나타난 현상이다. 전문가들은 벌이 꿀을 채취하는 밀원이 줄어든 가운데 사육 꿀통의 밀도는 전 세계 1위인 상황, 농약을 많이 쓰는 양봉 환경 등이 맞물려 꿀벌의 면역력이 급격히 약화한 영향으로 분석하고 있다.

사실상 국내에 한 종류의 꿀벌이 서식하는 것도 요인으로 꼽힌다. 주위에서 흔히 보이는 꿀벌은 서양 꿀벌이다. 한국 재래꿀벌은 2009년 발생한 낭충봉아부패병으로 42만 군에서 2016년 1만 군으로 줄었다. 불과 7년 만에 재래꿀벌의 98%가 사라진 것이다. 개량종 등을 개발했지만 여전히 3만~10만 군 수준에 불과하다. 야생벌도 25% 이상 사라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꿀벌 실종, 인간 생존과도 직결
꿀벌 감소로 인한 농산물 피해는 단순히 경제적 영향에 그치지 않는다. 매슈 스미스 하버드 공중보건대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꿀벌과 같은 화분매개자가 감소하면서 매년 40만 명이 영양실조로 사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스미스 박사는 “화분매개자가 충분하지 않아 전 세계 과일, 야채, 견과류 등의 생산이 3~5% 줄었다”며 “이는 건강한 음식 소비 감소와 질병을 초래해 연간 42만7000명을 사망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밀원수 복원에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꿀벌의 먹이가 되는 식물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정철의 안동대 교수는 “농약, 기후변화 등 환경 변화에 적응하려면 잘 먹고 건강해야 하는데 한국의 꿀벌은 밀원수 부족으로 영양실조 상태”라며 “최소 30만ha의 밀원 면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꿀벌 실종을 막기 위한 정부 차원의 연구도 절실하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한국의 꿀벌 관련 연구 예산은 31억원(2021년 기준)으로 전체 연구개발(R&D) 예산(27조4005억원)의 0.01%에 불과하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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