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화되는 불경기로 세금이 눈에 띄게 적게 걷히면서 정부 재정에 비상이 걸렸다. 윤석열 정부가 건전재정·긴축재정을 내걸었지만, 지출 증가를 최대한 억제하겠다는 것일 뿐 예산 규모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복지예산 등은 한 번 도입하면 줄이기가 사실상 어렵고, 고정적으로 나가는 지출(경상경비)도 손대기 어렵다. 세금이 덜 걷히면 적자국채를 발행하는 수밖에 없는데, 늘어나는 국가채무는 적색 지대로 들어서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지방자치단체는 추가경정예산을 짜면서 지출을 확대하고 있다. 추경에는 불요불급 선심성 예산도 적지 않다. 지방교부금 배정 방식 변경, 지방재정 준칙 제정 같은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지자체 살림을 중앙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한가.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5월 초 현재 17개 광역단체 가운데 12곳이 2023년도 예산의 추경을 짜고 있다. 정부가 지방재정법에 따라 내국세의 19.24%와 종합부동산세를 지방교부세로 내려주면서 비롯된 일이다. 가만히 있어도 전년도에 많이 걷힌 국세의 상당 부분이 내려가니 이를 다 써버리기 위해 예산 집행 계획을 다시 짜는 것이다. 12개 광역시가 당초 짜둔 지출예산은 총 115조원가량인데, 추경을 통해 4조5517억원(4%)을 더 쓰려고 한다. 매년 내국세의 20.79%를 각 지방교육청에 무조건 보내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과는 완전히 별개의 돈이다.
이러니 지자체나 지방교육청으로 가면 건전 재정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인구 감소 시대, 지방 인구는 더 심각하게 줄고 있다. 그런데도 지출은 그대로다. 그나마도 의미있는 사업에 제대로 사용을 못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기존의 통제 제도를 강화해 건전재정의 고삐를 바짝 좨야 한다. 지방재정이 부실해지면 모두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 만큼 자치행정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와 나라 살림을 총책임지는 기획재정부가 감시를 강화하면서 제도 보완에 적극적으로 나설 때다.
이런 판에 지자체에만 긴축을 요구하고 지출을 줄이라고 강요할 수 있나. 정부가 모범을 보인 뒤에나 할 요구다. 더구나 올해 추경은 법에 따라 지방교부세가 지급되기에 이를 쓰기 위한 것이다. 지방교부세가 많다는 정책적 판단이 있다면 먼저 법을 바꿔야 한다.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시·도나 시·군·구에 가는 일반 교부금이 아니라 학생은 없는데도 무작정 늘어나는 교육교부금이다. 수십조원씩 쌓여 있는 이것부터 개혁해야 한다. 지방 재정자립도가 낮은 것도 지방 탓이 아니라 대부분의 주요 세금을 국세로, 즉 정부가 징수하는 한국의 세금 제도 요인이 크다. 재정자립도를 비판하려면 주요 세목을 지방세로 돌리는 입법이 선행돼야 한다.
수도권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위기다. 인구는 줄고 경제도 활력을 잃고 있다. 정부든 지자체든 지방에 재정을 더 쏟아야 한다. 추경 정도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지방 재원을 더 확대해야 할 시기다. 모처럼 자치행정이 뿌리내리는 판에 정부가 또 미주알고주알 간섭하려 해선 안 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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