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들이 한동안 뜨거운 인기를 누렸던 가상현실 공간 ‘메타버스’ 사업을 추진했다가 잇달아 폐기하거나 사업을 축소·전환하고 있다. 메타버스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 비용이 적지 않게 든다는 점이 뚜렷해진 데다, ‘위드 코로나’ 시대로 전환하면서 비대면 공간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해야 할 필요가 확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우르르 투자, 와르르 폐기
한국지방연구원에 따르면 작년 2월 기준으로 메타버스 관련 서비스를 추진했거나 추진하는 중인 지방자치단체 수는 14곳에 달한다. 경기, 충남, 제주도 사례 등을 포함하면 사실상 전국 광역지자체 17곳 모두 메타버스 관련 사업을 벌였다. 2020~2021년 경 전 세계적으로 페이스북이 ‘메타’로 이름을 바꾸는 등 메타버스 관련 투자 열풍이 불었던 영향이다. 당시 미국 소비자가전전시회(CES) 등에서 메타버스가 큰 화두로 떠오르자 뒤질세라 관련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그러나 이렇게 야심차게 시작한 메타버스 사업 중 상당수는 1~2년만에 메타버스 열풍이 사그라들면서 흐지부지되는 중이다. 수원시는 2021년 11월 메타버스 정책연구단을 꾸려서 가상의 지방정부 ‘버추얼 수원’을 운영한다는 중장기 목표를 세웠다가 중간에 계획을 폐기했다.
서울시의회는 메타버스를 운영하기 위해 10억원의 예산을 잡아뒀다가 두 차례 자문회의에서 “안 하는 게 낫겠다”고 하자 불용예산(안 쓴 예산) 처리하고 없던 일로 했다. 제주특벌자치도는 메타버스에서 제주도 특산품 쇼핑몰을 운영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가 제주도의회에서 “메타버스 쇼핑 자체도 활성화 돼 있지 않은데 시기상조”라는 질타를 받았다.
열심히 만들어 놓은 메타버스도 후속 투자가 따르지 않고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방치되는 곳이 대다수다. 전라남도는 ‘전남 관광 메타버스’에서 여수·순천·진도 3곳의 6개 관광명소를 3차원 공간에 구현했다. 누적 방문객 수는 10만명으로 꽤 되지만, 19일 오후 현재 방문자 수는 ‘0명’ 이다. 새로운 이용자가 안 들어오는 것이다. 광주시청이 제페토에 마련한 ‘빛고을 광주광역시청’ 소통플랫폼은 누적 방문자 수가 622명에 그쳤다. 업데이트도 몇 달째 멈춘 곳이 태반이다. 사실상 중단 수순으로 진입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네이버의 제페토나 SK텔레콤의 이프랜드 등 대기업이 만든 플랫폼에 들어간 경우에는 관리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방문객을 지속적으로 유인할 요인을 계속 제공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제페토 내에 조성된 충북 영동의 송호국민관광지나 경북 로컬관광 기댈언덕빌리지(포항 영덕 울진 바닷가)는 하루 종일 10명도 찾지 않는 날이 흔하다.
“지자체가 왜…” 회의론도
아직 의지가 강한 지자체도 일부 있다. 서울은 2026년까지 405억원을 쓰겠다는 계획 하에 ‘메타버스 서울’을 운영하고 있고, ‘메타버스 수도 경북’을 시작한 경북은 이 사업에 올해에만 221억원 예산을 편성해 놨다. 경북은 중장기 메타버스 프로젝트 추진을 위해 정부 예산 482억원도 따냈다. 이병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디지털콘텐츠과장은 “서울과 경북은 데이터 보안 등의 이슈를 고려해 직접 메타버스를 하겠다는 계획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해당 지자체에서도 “디즈니나 메타도 쉽지 않은 메타버스 사업을 지자체가 굳이 직접 해야 할 이유가 있느냐”는 의견이 나온다. 과기정통부는 최근 메타버스 산업 활성화 태스크포스(TF)에서 “공공데이터를 개방해서 메타버스 산업 전체 활성화에 기여”하도록 지자체들을 독려하겠다고 밝혔다. 직접 하는 것보다는 민간 업체들과 협력하는 쪽으로 지자체의 역할을 정한 셈이다.
유행 따르다 세금만 낭비
애초에 지자체들이 ‘유행을 따라’ 세금을 쓰는 행태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김진형 경남연구원 콘텐츠산업정책 담당 연구위원은 “국가적 예산이 투입됐지만 대부분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구현된 콘텐츠가 조잡했고 지역에 특화된 스토리라인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자꾸만 바뀌는 트렌드를 따라가기에 바쁜 지자체 담당자들도 걱정이 많다. 올 연말께 메타버스를 선보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한 지자체 관계자는 “작년에 기획을 할 때는 당시에 주목받는 트렌드에 맞는 내용으로 했던 건데, 개발하는 사이에 열기가 식은 느낌”이라며 “실제로 출시하는 시점에는 또 뭔가 바꿔야 하는 부분이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했다.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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