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매년 5월 25일은 '방재의 날'입니다. 재해 예방에 대한 국민 의식을 높이고 재난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인데요. 매년 이날엔 전국적으로 재난 대응 훈련이 치러지기도 합니다. 재난을 막는 데에도 '기술'이 접목되는 시대입니다. 한경 긱스(Geeks)가 방재의 날을 맞아 재난에 대처하는 솔루션을 가진 스타트업들을 소개합니다.
#지난해 가을 미국 플로리다를 덮쳤던 허리케인 '이안'은 150명 이상의 사망자와 함께 1000억달러(약 130조원) 넘는 피해액을 남겼다. 미국 사상 역대 5번째로 강력했던 이 허리케인의 피해 정도를 거의 정확하게 맞춘 회사가 있다. 미국 스타트업 원컨선이다. 이 회사는 기후 데이터를 분석해 홍수 같은 재난이 닥칠 경우 기업에 미치는 피해가 어느정도인지 예측하고 시뮬레이션하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를 선보였다. 2015년 설립된 이 회사는 지금까지 약 1억2000만달러(약 1600억원)를 투자받았다.
#2019년 문을 연 토종 스타트업 인터랙트는 가상현실(VR) 기술을 바탕으로 한 재난 안전훈련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 이 회사는 화재나 감전사고 같이 소방관의 대응이 필요한 상황을 VR로 구현했다. 성장성을 인정받아 2021년 중소벤처기업부의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인 '팁스'에 선정되기도 했다.
재난 상황을 예방하거나 대응하는 데도 스타트업의 '기술'이 쓰이고 있다. 기후 데이터를 분석해 산불이나 홍수 등 자연 재해뿐만 아니라 작업 현장에서의 안전 사고 같은 산업재해 상황에도 스타트업의 돌풍이 거세다. 이 회사들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가치가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더욱 각광받고 있다.
산불에 대처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코드오브네이처는 산불로 소실된 산림을 복구하는 키트를 개발했다. 이끼의 포자를 인공배양해 가공한 뒤 성장을 촉진하는 양액과 혼합해 만들었다. 이를 헬기나 드론 등을 이용해 피해를 입은 산림에 살포하는 식이다. 기존 복구 방식에 비해 비용은 60%, 기간은 30% 이상 단축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이 회사는 성장성을 인정받아 롯데벤처스, 더벤처스, 시리즈벤처스 등으로부터 벤처투자금도 유치했다. 박재홍 코드오브네이처 대표는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연이 아직 시작되기 전, 원시상태의 지구에 등장한 최초의 육상식물이 이끼"라며 "이후 지금의 환경을 만들어낸 강인한 생명력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산불 예방엔 드론 스타트업의 기술력도 들어갔다. 예를 들어 드론 스타트업 아르고스다인은 산림 재해를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지형이 복잡한 산악 지역에 설치할 수 있는 이동형 스테이션을 개발했다. 또 드론에 열화상 카메라를 부착해 산불을 감시할 수 있고 조난자를 찾는 것도 가능하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이 회사는 남부지방산림청에 시스템을 실제로 공급하고 있다.
비슷하게 판교 창업존 입주기업 출신으로 드론 기반 화재 감지 솔루션을 내놓은 스타트업 오조, 드론에 장착할 수 있는 유도 소화탄을 만든 오토노미아 등도 산불과 같은 화재에 특화된 서비스를 선보였다. 또 2016년 문을 연 뒤 고속 성장해 2020년 코스닥시장 입성에 성공한 알체라는 인공지능(AI) 영상 인식 기술을 통해 CCTV에 찍힌 산불을 감시하는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대세가 된 '기후테크' 스타트업
이상 기후 현상이 잇따르면서 태풍과 홍수 같은 자연 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기술도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인공지능(AI) 기업 에스아이에이는 위성 영상 데이터를 AI로 분석하는 기술을 통해 기후를 관측하는 솔루션을 개발했다. 이를테면 기상 관측 위성에서 받은 영상 데이터를 분석해 특정 지역의 강수량을 산출한 뒤 홍수 같은 기상 재해 발생 가능성을 예측하거나 작물이 직힌 영상을 학습한 뒤 가뭄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는 식이다. 또 지진이 발생했을 때 건물이 파괴되는 정도도 파악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이화여대 교원창업기업 출신인 레인버드지오 역시 위성 영상을 분석하는 기술을 보유했다. 이 회사는 비가 자주 오는 열대 기후 지역에 뇌우 조기 탐지 알고리즘을 적용한 솔루션을 공급한다. 또 정지기상위성의 에어로졸 광학두께 자료를 수집해 대기오염 정도를 모니터링하기도 한다. 회사 측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의 뇌우 탐지율은 평균 85%, 오탐지율은 35%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벤처캐피털(VC) 등 투자자들은 '기후테크' 분야를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임팩트 투자로 규정하고 관련 회사를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임팩트 전문 투자사 소풍벤처스가 대표적이다. 소풍벤처스는 기후 기술 분야의 시의성 있는 주제로 산업 동향과 유망 스타트업 사례를 소개하는 '월간클라이밋', 기후 기술 분야 창업가와 전문가들을 연결하는 네트워킹 행사인 '클라이밋테크 스타트업 서밋' 등을 연다.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는 "기상 예측과 재해 방지 분야는 비용이 많이 들고 탄소 배출량을 직접적으로 줄이는 '기후 완화'의 영역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간 세계적으로 투자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며 "하지만 가뭄, 산불, 홍수 같은 기후 위기로 인한 재난이 일상화되면서 재난이 단순 일상의 불편함을 넘어 사회 인프라에 피해를 미친다는 인식이 커진 만큼 앞으로는 활발한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VR로 안전사고 예방... '산재'에도 기술 접목
'재난 방지'라는 임무는 자연재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작업 현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안전 사고와 같은 산업재해를 막기 위해서도 스타트업들이 발벗고 나섰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산업 안전에 대한 관심이 커짐에 따라 이 분야에 기업 간 거래(B2B) 서비스를 가진 스타트업도 주목받는다.스타트업 엠라인스튜디오는 VR 기술을 이용해 건설 현장의 사고를 체험할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놨다. 예를 들어 플랜트 현장의 작업자가 되는 상황을 연출해 추락, 감전, 충돌, 화재, 낙하물 깔림 등의 사고 상황을 직접 느껴볼 수 있게 했다. 사고의 전조 증상이나 에피소드까지 엮어 생생함을 더했다는 설명이다. 이를 통해 몰입감을 높이고 작업 현장에서의 안전 불감증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가 하면 라이다(LiDAR) 스타트업 하이보는 KT그룹과 협업해 AI 가상 펜스를 만들었다. 라이다 기술을 통해 작업 현장의 이상 상황을 식별할 수 있는 기능을 갖췄다. 작업자가 위험 구역으로 들어가는지 확인이 가능하다. 산업용 자율주행 드론 스타트업 니어스랩은 사람이 작업하기엔 위험한 풍력발전기나 송전탑 같은 시설을 드론이 점검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또 원프레딕트는 AI로 산업 설비가 언제 고장날지를 예측해 재해를 막는 데 힘쓰고 있다.
'카톡'의 먹통이 일상을 뒤흔드는 시대가 되면서 데이터 피해도 재해로 인식된다. 삼성벤처투자의 러브콜을 받은 제트컨버터클라우드는 클라우드 재해 복구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도 했다. 김대현 더벤처스 파트너는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미 방재 분야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이 등장했지만 한국에선 아직 없다"며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 재해뿐만 아니라 산업 재해도 심각해지면서 다양한 분야의 방재 기술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이 커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 투자가 활발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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