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발표된 알베르 카뮈의 장편소설 <페스트>. 코로나 팬데믹을 예언한 고전으로 새삼 널리 읽힌 작품이죠. 소설 속 문장들은 3년 만에 마스크를 벗고 봄날을 만끽하고 있는 요즘의 풍경과도 겹칩니다. “오락의 장소들은 터질 듯한 성황을 이루었으며, 카페들은 앞일은 걱정도 하지 않은 채 마지막 남은 술을 다 털어 내놓는 것이었다. (생략) 마치 그날이 자기들의 생환 기념일인 양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지난 5일 세계보건기구(WHO)는 마침내 코로나 비상사태 종료를 선언했습니다. 코로나의 그림자가 옅어지고 있는 지금, <페스트>를 다시 읽기엔 너무 늦었을까요? 아니, 지금이야말로 이 책을 읽기에 알맞은 때일지도 몰라요.
소설의 배경은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오랑시(市). 도시의 쥐들이 원인 모르게 죽어 나가면서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페스트>는 재난을 통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의사 리외는 폐쇄된 도시에서 의료인의 사명을 다합니다. 그의 아내는 폐결핵에 걸려 다른 도시의 요양원에 머물고 있어요. 그가 오랑시에 남아 환자들을 돌보는 사이에 아내는 세상을 떠납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취재를 나온 기자 레몽 랑베르는 오랑시에 갇혀버립니다. 그는 전염병을 다른 도시에 퍼뜨릴 위험성에도 탈출을 꿈꾸죠. 파리에 있는 약혼녀를 만나고 싶어서요. 그런데 그는 결국 오랑시에 남아 사람들을 돕기로 합니다.
기자 랑베르는 의사 리외에게 ‘영웅이 되고 싶은 거냐’고 묻습니다. 리외는 답합니다. “영웅주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성실성의 문제입니다. 아마 비웃음을 자아낼 만한 생각일지도 모르나,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내 경우로 말하면, 그것은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 말처럼 쉽지 않죠. 특히 재난 상황에서는요. 위기를 마주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죽든지 말든지 자기만 살겠다고 직분을 포기한 사례를 우리는 종종 보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인간에게서 간신히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면, 크고 작은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직분을 지켜 결국 공동체를 지켜내는 이들 덕분일 겁니다.
소설은 서늘한 경고를 남기며 끝나요. “시내에서 올라오는 환희의 외침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리외는 그러한 환희가 항상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 기쁨에 들떠 있는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생략)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의 끝자락에 <페스트>는 이렇게 묻는 듯합니다. 지난 3년간 당신은 성실한 사람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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