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테라스 식탁 위에는 맛깔스러운 음식들이 놓였다. 오랜 시간 곤 닭백숙이 올라오자 모두가 감탄사를 연발한다. 집주인이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신선한 재료들로 만들어 군침이 넘어간다. 뉘엿뉘엿 석양이 저물어가는 고즈넉한 산골 마을의 저녁은 한 무리의 방문객으로 인해 왁자지껄 부산스럽다. 마치 대학 시절 MT에 온 느낌이다. 30년이라는 시간적 간극을 제외하면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들은 모두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이거나 중역이다. 집주인과 한 무리의 방문객은 필자가 모 대학의 ‘웰에이징 시니어 산업과정’을 다니면서 만난 동기들이다. 50대인 필자가 그중 가장 젊은 축에 속한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 이 모임에서 서로를 부르는 호칭은 형님, 누님, 동생이다. 서로 걸어온 인생 역정(歷程)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함께 나이 들어간다는 점, 삶의 경험과 에피소드를 공유한다는 점, 그리고 ‘웰에이징’에 관심이 많다는 점이다.
학연, 지연과 달리 특정한 계기로 형성된 모임이 오랜 기간 지속되려면 구성원 간의 배려와 인정(人情)은 물론 기꺼이 타인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누군가의 헌신이 필요하다. 그런 분들을 만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행운이다. 감사하게도 내가 그런 행운을 누리고 있다. 서로에 대한 배려는 기본이고, 아무리 바쁘고 멀어도 동기들의 경조사를 챙긴다. ‘소확행’과 나누는 기쁨의 참된 의미를 알고 실행하는 분들이다. 나는 이분들 덕분에 해결책을 찾기 어려워 머릿속을 온통 헤집고 있는 복잡한 사안들과 하루하루가 전쟁터인 도심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산골 마을에서 ‘일단 멈춤’의 시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천새푸름제에서의 하이라이트는 아침 닭 울음소리를 들으며 신선한 공기를 무제한으로 들이켜는 것이다. 산자락을 감싸며 흘러 내려오는 구름과 개천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몽환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커피 한 잔 들고 야외 테라스에서 부슬비와 안개가 어우러진 연녹색의 풍광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자니 잔잔한 내면의 울림이 들려온다. 행복하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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