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담배社 '연기 안나는 궐련' 혁신…"말보로, 박물관 보낼 것"

입력 2023-05-21 17:53   수정 2023-05-22 00:19


“비연소 담배(HNB: 가열 방식의 궐련형 전자담배)가 왜 좋냐고요? 이 말로 대신하죠. 지구는 둥글고, 갈릴레이가 결국 옳았습니다.”

스위스 뇌샤텔에 있는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PMI)의 연구개발(R&B) 센터 ‘큐브’. 야체크 올차크 PMI 회장(사진)은 이달 중순에 열린 큐브 임직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확신에 찬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유튜브 등으로 생중계된 행사에서 올차크 회장은 “올해로 51년째를 맞은 PMI의 담배 1위 브랜드 ‘말보로’를 박물관에 유물로 보내는 게 PMI의 확고부동한 목표”라고 강조했다.
‘거대한 전환’ 앞장선 CEO
올차크 회장은 글로벌 담배 산업의 미래를 뿌리째 바꾸고 있는 ‘투사’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영어 교육 한번 받아보지 못한 폴란드 출신이다.

그는 PMI에 입사한 지 30년째인 올해 세계를 상대로 ‘거대한 전환’을 촉구 중이다. ‘스모크 프리 퓨처(담배 연기 없는 미래)’가 그가 현실화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미래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 그의 여정은 험난, 그 자체다. 경쟁사들은 PMI를 ‘세계 1등’의 지위에서 끌어내릴 절호의 기회로 본다. 무엇보다 큰 난관은 전자담배가 연초보다 인체에 덜 해롭다는 과학적 증거들을 믿지 않으려고 하는 부정적 시각이다.

PMI가 2014년 일본에 HNB 제품인 ‘아이코스’를 처음 선보인 이후 아이코스를 포함해 비연소 담배가 팔리고 있는 국가는 78개국에 머문다. 아르헨티나는 아예 전자담배 등 연초 대안 제품의 수입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유럽에서도 벨기에의 수도인 브뤼셀은 흡연자의 100%가 연초를 피운다.

온갖 난관에도 불구하고 올차크 회장과 PMI의 행보에는 주저함이 없다. 지금까지의 결과는 그들의 선택이 올바른 길임을 입증하고 있다. 비연소 제품의 순매출 비중은 2021년 29.7%에서 올 1분기 약 35%로 확대됐다.

일본, 이탈리아, 덴마크, 그리스 등 17개국에서는 50%를 넘어섰다. PMI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전 세계 아이코스 이용자 수는 2580만 명에 달한다.

PMI는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14년간 비연소 제품에 105억달러(약 13조9000억원)의 투자금을 쏟아부었다. 천문학적인 투자를 단행하면서도 매출과 이익 증가라는 경영의 원칙을 꾸준히 지켜나가고 있다.

PMI의 지난해 매출은 317억6200만달러(약 42조2000억원)로 전년 대비 1.1% 증가했다. 올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5% 증가했다.

지난해 매출총이익도 203억달러(약 26조9000억원)로 2019년(191억달러)보다 6.2% 늘어났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등 세계 주요 시장이 흡연인구 감소 추세에 접어드는 등 담배 산업이 구조적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여건에 봉착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목할 만한 성과라는 게 글로벌 금융투자업계의 시각이다.
폴란드 출신 ‘마이너리티’의 혁신
과거와의 단절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찾는 PMI의 행보는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파격적이란 게 대체적인 평가다. PMI는 올차크 회장이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았던 2016년 ‘담배 연기 없는 미래’를 선언했다.

2025년까지 전체 담배 매출 중 비연소 담배의 비중을 50%로 끌어올리겠다는 비전도 발표했다. 올차크 회장은 “얼마 전 말보로를 박물관에 유물로 보낸다는 콘셉트의 영상을 촬영했다”며 “말보로의 브랜드 매니저이자 디렉터가 이를 주도했다는 점은 세상에 우리가 알리고 싶은 바를 정확히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PMI의 변신은 기업 조직론의 관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례로 거론된다. 전기차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제너럴모터스(GM)가 “회사의 역량을 내연 자동차를 없애는 데 집중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유수의 자동차 회사들이 전기차에 ‘올인’하고 있다. PMI는 글로벌 자동차 업계와 비슷하게 딜레마를 해결해나가고 있는 글로벌 기업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전문가들은 올차크 회장의 역할에 주목한다. 폴란드에서 대학까지 나온 그는 1993년 PMI 폴란드 재무팀에 입사했다. 생산, 판매 부문 등을 두루 거쳐 폴란드·루마니아 총괄 매니저, PMI 최고재무책임자(CFO), COO를 역임한 뒤 2021년 5월 회장에 취임했다. 1847년 영국 런던의 작은 담배 가게에서 출발해 200년 가까이 글로벌 담배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PMI에서 동유럽 출신의 CEO는 올차크 회장이 유일하다.

그가 가진 최고의 무기는 ‘진정성’이다. 올차크 회장은 “지난 수년간 말보로 고객들에게 ‘담배를 끊으라, 정말 어렵다면 전자담배로 바꾸라’는 메일을 끊임없이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도 ‘말보로맨’에서 ‘아이코스맨’으로 전향했다. ‘PMI가 인류의 건강을 위한 헬스케어 회사로 변신할 것’이라는 비전은 조직 내부의 담배에 대한 철학을 바꿔놨다.
담배 회사를 헬스케어 기업으로
전문가들은 PMI가 글로벌 담배 산업의 패러다임을 연초에서 비연소 제품으로 완전히 바꿔 ‘퍼스트 무버’의 이점을 누리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PMI가 전자담배 등을 연구하기 위해 뇌샤텔에 큐브로 불리는 R&D 센터를 세우기로 구상한 건 2005년이다.

PMI는 4년 뒤 센터를 열면서 제약·바이오산업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을 빨아들였다. 현재 큐브 근무 인원은 1500여 명에 달한다. 올차크 회장은 “연간 R&D 예산의 99%를 ‘연초의 대안’을 찾는 데 쏟아붓는다”며 “전체 인력의 4분의 3이 신사업에 배치돼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확고부동한 비전을 세우니, 선제적이고 효과적인 자원 배분을 단행할 수 있었다는 게 PMI 변신의 핵심 줄거리다.

올차크 회장은 PMI를 헬스케어 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인수합병(M&A)도 진두지휘하고 있다. ‘비욘드 니코틴(니코틴을 넘어)’이라고 불리는 탈(脫)니코틴 사업을 새로운 비즈니스로 개척해 2025년 매출 10억달러(약 1조3200억원)를 올리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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