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어린이집도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작년 서울에 있는 국공립 어린이집의 정원 충족률(충원율)은 79.1%에 그쳤다.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후 이 비율이 80% 아래로 떨어진 것은 처음이다. 2017년만 해도 90%를 넘겼지만 최근 5년 사이 하락세가 가팔라졌다. 2019년 88.5%에서 2020년 85.0%, 2021년 82.3%로 뚝뚝 떨어지다가 지난해 80% 선 아래로 내려갔다.
민간 어린이집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작년 서울 내 민간 어린이집 총정원은 6만5662명인데 현원은 4만7079명(71.7%)에 불과했다. 사회복지재단과 법인 단체가 운영하는 어린이집 충원율은 각각 64.6%, 68.7%로 심각한 수준이다.
어린이집 연쇄 폐업의 가장 큰 이유는 저출생이다. 작년 서울 영유아 인구(만 0~6세)는 34만5083명이었다. 2014년 55만9662명에서 8년 만에 38.3% 감소했다. 특히 만 0~3세 영아의 감소세가 가팔랐다. 같은 기간 32만3855명에서 17만6989명으로 반토막 수준으로 줄었다.
아이가 감소하면서 어린이집 폐원도 잇따르고 있다. 작년 말 기준 서울에서 운영 중인 어린이집은 4712개로 2014년보다 2075개 줄었다. 8년간 세 곳 중 한 곳이 문을 닫은 셈이다. 태어나자마자 대기를 걸어야 들어갈 수 있다던 국공립 어린이집도 상황이 어려워졌다. 서울 국공립 어린이집 충원율은 2014년 88.4%에서 2022년 79.1%로 80% 아래로 떨어졌다.
수치로도 증명된다. 유치원에 다닐 수 있는 나이(만 3~5세) 가운데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는 2014년 10만735명에서 작년 6만6970명으로 33.5% 줄었다. 같은 기간 유치원 원아 수는 9만1195명에서 6만6524명으로 27% 감소하는 데 그쳤다.
박창현 유아정책연구소 미래교육연구팀장은 “보육보다는 교육을 원하는 부모가 늘면서 어린이집에 다니던 아이가 만 3세가 되면 유치원으로 옮기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2019년 누리과정을 학습 중심에서 놀이 중심으로 개편했다. 놀이·체험활동을 통해 문자에 대한 호기심을 높인 뒤 한글 학습은 초등학교 입학 후 배우도록 하고 있다. 공립 유치원 대부분은 영어 교육은커녕 한글 교육조차 하기 어렵다. 영어 유치원은 방학이 짧고 셔틀버스도 운행하기 때문에 맞벌이 부부가 선호한다.
영어 유치원 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서울에 있는 영어 유치원 수는 2015년 162개에서 2022년 269개로 107개(66.0%) 증가했다. 학업 경쟁을 시작하는 연령이 계속 낮아지는 가운데 ‘어릴 때부터 교육을 시작해야 결과가 더 좋을 것’이라고 여기는 학부모가 많기 때문이다.
영어 유치원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동기에 꼭 필요한 교육에 소홀해질 수 있어서다. 손혜숙 경인여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학원으로 분류되는 영어 유치원에서는 영·유아 시기에 필요한 인지, 정서, 사회성, 신체 발달 등 전인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혜인/강영연 기자 h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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