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와 가까스로 공사비 인상에 합의한 전국 주요 재건축·재개발 정비 사업지가 다시 내홍을 겪고 있다. 공사비 합의안을 두고 내부 반발이 극심해진 까닭이다. 일부 조합은 공사비 인상에 합의한 조합장을 해임하자며 총회를 예고했다. 사업 지연으로 피해가 누적되고 있는 건설사 역시 공사비 합의 불발에 난처하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선 “갈등이 계속되면 주택 공급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앞서 조합은 시공단으로부터 지하 공사비 580억원을 인상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조합은 협상 끝에 한국부동산원의 공사비 검증을 받기로 했다. 지난해 12월 한국부동산원은 580억원 중 524억원의 공사비를 인정했다. 그러나 조합 총회에서 과반수 조합원이 반대하며 공사비 인상은 사실상 부결됐다.
조합원은 524억원이나 공사비를 올리는 게 과도하다고 주장했다. 지난해부터 공사비 인상을 요구한 시공단은 안건 부결에 따라 조합원 입주 제한까지 검토 중이다. 시공단 관계자는 “조합원에게 여러 차례 입주 제한 가능성을 설명했다”며 “대응 방안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서울 마포구 공덕1구역 조합은 조합장을 비롯한 집행부를 해임하기 위해 총회를 예고한 상태다. 조합은 앞서 3.3㎡당 448만원이던 공사비를 613만원으로 인상하는 데 합의했다. 늘어난 공사비는 1150억원 규모다. 그러나 합의 후 조합원이 공사비 인상액이 과하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급기야 일부 조합원은 “조합이 시공사에 유리하게 합의했다”며 임원 해임총회를 발의했다.
시공사의 공기 연장안에 합의한 서울 관악구 ‘봉천 4-1-2 재개발사업’ 역시 합의안이 총회에서 부결됐다. 이후 시공사는 공기 연장과 함께 공사비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통보를 재차 했다. 조합원은 오히려 지체배상금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조합이 잘못된 합의를 했다며 해임총회 발의서 모집을 시작했다.
최근 공사비 인상 합의에 성공한 서울 강남구 대치푸르지오써밋(조감도)은 합의안에 반발하는 일부 조합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조합 총회에서 공사비 인상안을 의결했는데 이에 반발한 비상대책위원회가 시공사 앞에서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시공사 관계자는 “합의에 따라 입주 등은 예정대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조합과 공사비 인상에 합의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 역시 “합의한 공사비도 국토교통부의 기본형 건축비(3.3㎡당 640만원)에 미치지 못한다”며 “공사비를 더 낮추면 부실 공사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공사가 한창인 사업지를 중심으로 공사비 인상 갈등이 지속돼 대규모 입주 지연 사태가 빚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조합의 인상 합의안이 부결되면 사업 지연 기간에 금융비용만 불어난다”며 “공기가 지연돼 입주 차질이 불가피할 수 있다”고 했다.
유오상 기자 osy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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