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1년밖에 안 된 문 전 대통령이 촬영을 허락하고 인터뷰에 응한 것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더욱이 문 전 대통령은 2020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업무에 전력을 다하고 끝나면 잊힌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공언해놓고 영화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정치색을 배제하기 위해 최종 개봉에선 뺐다고 하나 사전 공개한 장면에서는 “5년간 이룬 성취가 순식간에 무너지고 과거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허망한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 정도면 해괴한 나르시시즘에 다름 아니다. 집권 5년간 30번 가까운 부동산 정책 실패로 서민들을 고통스럽게 했다. 탈원전은 천문학적인 한전 적자로 이어졌고, 그 부담은 국민 몫이다. 곳간 허물기로 집권 5년간 나랏빚이 400조원 늘어 1000조원을 돌파해 미래 세대에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떠넘겼다. 북한의 가짜 평화에 맞장구치는 바람에 핵·미사일 개발에 시간만 벌어줬다.
문재인 정부 실정(失政)을 꼽자면 ‘참회의 다큐’를 찍어야 할 판이다. 무엇을 이뤘다고 “성취가 무너졌다”고 하나. 그 인식이 국민의 평균값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문 전 대통령은 ‘당장 소주 한잔 기울이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조국”이라고 답한 뒤 한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퇴임 뒤 조 전 장관의 책을 추천하며 “한국 사회의 법과 정의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는 촌평까지 남긴 터다. 대체 공정과 정의를 망가뜨린 장본인이 누구인데 상식 밖의 연민의 정에 애잔함까지 느껴진다.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말과 행동의 괴리다. ‘잊힌 사람’이라더니 퇴임 이후 행적을 보면 잊히지 않기 위해 바득바득 노력하는 사람과 같다. 양산 사저를 찾아오는 정치인들과 사진을 찍고, SNS를 통해 근황을 알리기 바빴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관련) 정말 위험하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수사와 관련) 분별없는 처사” “경제는 어렵고, 민생은 고단하고, 안보는 불안하다” 등 현 정권을 향한 정치적 비판도 줄을 이었다. 전직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을 정면 공격한 예는 찾기 어렵다. 링 바깥을 빙빙 돌며 펀치를 날릴 기회를 엿보는 아웃복서와 같다.
후안무치의 백미는 사저를 찾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민주주의와 역사가 퇴행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어렵게 이룬 민주주의가 후퇴하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착각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불행하게도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당시 여권이 민주주의를 훼절한 사례는 열거하기 벅찰 정도다. 편법 사보임, 회기 쪼개기 등 온갖 꼼수를 동원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을 강행 처리하면서 의회 민주주의를 짓밟았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드루킹 여론 조작은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 공정성을 해쳤다. 언론에 재갈을 물려 “민주 국가에선 처음 있는 일”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문 전 대통령은 “(여권이) 끊임없이 저를 현실 정치로 소환하고 있으니까 (잊히고 싶다는) 꿈도 허망한 일이 됐다”고 했다. 오히려 그 자신이 퇴임 직후부터 현실 정치에 발을 걸쳐놓고, 잊히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쳐놓고, 특유의 남 탓을 하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이 지난달 문을 연 ‘평산 책방’에서 ‘책방지기’라며 앞치마를 두르고 환하게 웃는 모습은 그의 실정으로 고통받은 국민과 오버랩되면서 역시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문 전 대통령의 퇴임 1년은 이렇게 자기 과신에 남 탓, 적반하장으로 점철됐다. 그가 집권 시 사무실마다 선물했다는 춘풍추상(春風秋霜: 다른 사람은 봄바람처럼 대하고, 나 스스로에겐 서릿발처럼 엄하게) 액자는 쇼를 위한 가림막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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