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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전기자동차 등록 대수가 43만 대까지 늘어났습니다. 이에 맞춰 전기차 충전 인프라도 빠르게 확장되고 있습니다. 환경부에 등록된 전국의 전기차 충전기에 개인용 완속·급속충전기 등까지 합치면 국내 전기차용 충전기는 24만 대 수준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친환경차 충전 플랫폼 'EV 인프라'를 운영하고 있는 소프트베리의 박용희 대표는 충전 인프라를 통해 늘어나고 있는 각종 데이터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한경 긱스(Geeks)가 국내 전기차, 충전 인프라 산업에 대한 박 대표의 생각을 전합니다.
성마른 봄이 어느새 자리를 떴다. 30도를 넘나드는 한낮의 기온, 5월에 여름이 찾아왔다. 뜨거운 햇볕이 잦아들면 우리 가족은 골목골목 한껏 무르익은 푸르름을 즐기러 자주 산책을 나간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우리 가족을 뒤따르는 승용차 한 대를 만나곤 한다. 마치 ‘절대로 놀라게 하지 않겠다’고 작심이라도 한 것처럼 숨을 죽인 조용한 전기자동차다.
전기차는 발뒤꿈치를 든 학생처럼 조용하게 우리 일상에 자리 잡았다. 주차장에서 하늘색 번호판을 마주하는 것은 더 이상 어렵지도 신기하지도 않다. 누가 봐도 전기차로 보이는 세련된 디자인을 뽐내는 차가 내연기관 완성차 업계의 내로라하는 브랜드가 달려 있는 경우도 많다.
‘국토교통 통계누리’에 따르면 2023년 4월 기준으로 국내 등록 순수 전기차는 43만7000여 대 정도다. 27만2000여 대였던 작년 4월과 비교하면 큰 폭으로 늘었다. 여기에 친환경차로 묶이는 하이브리드차와 수소차를 더하면 국내 등록 친환경차는 174만7000여 대에 달한다. 2021년 7월 100만 대를 돌파한 지 1년 10개월 만에 약 175만 대 수준까지 늘어났다. 그야말로 가파른 성장세다.
전기차는 앞으로도 더욱 빠르게 증가할 전망이다. 앞서 정부는 2030년까지 총 362만 대의 전기차를 보급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여기에 환경부가 최근 '연간 저공해 자동차 및 무공해 자동차 보급 목표' 고시안을 일부 개정해 전기차와 수소차 등 무공해 자동차를 2030년까지 누적 기준 450만 대까지 끌어올리겠다며 성장세에 힘을 실었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한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연간 글로벌 전기차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기차는 전 세계적으로 1000만대 이상 판매됐다. 올해는 판매량이 35% 증가해 1400만 대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전기차가 늘면서 충전 인프라 성장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IEA의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충전기 1대당 2.6대의 전기차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전기차 충전기 보급률이 가장 높다. 그런데 2023년 4월 환경부에 등록된 16만 대 이상의 완속충전기(7kW급)에 개인용 완속충전기와 급속충전기까지 합치면 전국에 설치된 충전기는 실제로는 24만 대 이상이다. 이를 국내 등록 전기차 수인 약 43만 대와 비교하면 현재 IEA 보고서 집계보다 더 큰 규모의 충전 인프라가 우리나라에 갖춰졌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전기차와 충전 인프라의 성장은 ‘모빌리티 데이터’의 축적으로 이어진다. 내연기관 차량 산업과 달리 전기차 산업은 관련된 모든 요소를 데이터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전기차 충전 데이터다. 충전 데이터는 크게 배터리 데이터와 충전소 데이터로 나뉜다. 배터리 데이터는 배터리 상태, 충전량, 충전 빈도 등에 대한 데이터다. 사용자의 운전 습관과 운행 패턴 등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충전소 데이터에는 충전소의 위치, 타입, 충전소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사용량과 수요, 공급 등이다.
실시간으로 쌓이고 있는 이러한 데이터는 ‘원석’과 같다. 누가 어떤 솜씨로 가공하느냐에 따라 가치 있는 보석이 될 수 있다. 우선 배터리 용량과 충전·방전 특성에 대한 데이터를 보자. 이 데이터는 일차적으로 배터리 기술 개발에 활용된다. 이를 배터리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데이터, 충전 인프라와 연동된 데이터 등과 결합하면 전기차 성능 개선에도 쓸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데이터의 활용 가능 분야가 전기차 산업 너머로도 확장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해마다 여름철이 되면 전력난을 겪는다. 그런데 전기차 충전 데이터를 통해 ‘피크 타임(오후 2시~오후 5시)’의 전력 수요량을 예측하고 이를 바탕을 전력 수요 분배 전략을 세울 수 있지 않을까.
공간 활용은 또 어떤가.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서울의 주차장 확보율은 137%다. 하지만 주택가에선 주차장 부족을 훨씬 더 크게 체감한다. 그러다 보니 아파트에 전기차 충전시설을 만들 때 입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벌어지기도 한다. 전기차를 가진 입주민들에겐 충전시설이 갖춰진 주차장이 필요하지만 다른 주민들에겐 가뜩이나 부족한 주차 공간에 전기차 전용 주차공간은 내연기관차 주차 공간의 감소를 뜻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전기차 충전 방해 금지법’이라고 불리는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친환경차법)에 따라 내연기관 차량을 환경친화적 자동차 충전시설의 충전구역 및 전용주차구역에 주차할 경우 2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전기차 충전 데이터로 지역별 최적의 충전 시설 설치량을 파악할 수 있고, 이용 행태 데이터를 통해 주차 공간의 가변적 활용 방안 등도 구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전기차 사용 및 충전 데이터는 금융 및 보험 상품 개발에 쓰이고, 이동 패턴 데이터 등은 교통체증이나 대기오염 대처에 활용될 수 있다. 아울러 ‘식당이 갖춘 주차장에 전기차 충전시설을 만들고 손님들이 식사할 때 무료 충전을 지원해본다면?’, ‘주차장 크기 유휴 부지를 어떻게 활용했을 때 비용 대비 수익이 최대화될까?’ 등의 상상도 해본다. 이를 구체화하는 데 전기차 관련 데이터가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 대표적인 과제가 데이터 표준화다. 현재는 데이터를 각각의 제조사나 충전기 업체에서 독자적으로 수집하고 있다. 이 때문에 데이터의 중복과 불일치가 발생한다. 환경부는 공공충전소 정보를 사업자들로부터 취합해 제공하지만, 사업자별 상태 정보와 업데이트 주기가 다르다. 그러다 보니 데이터의 활용 범위가 데이터를 수집한 회사 내부에 한정되고, 다양한 분야에 걸친 협업적 활용에 한계가 있다.
전기차 데이터 표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미래는 의료 산업을 통해 그려볼 수 있다. 현재 의료 산업은 다양한 의료 데이터를 통합하고 표준화된 형식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의료진은 환자의 진료 기록, 검사 결과, 약물 처방 정보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뒤 보다 정확하고 효과적인 치료 방법을 찾아내고 있다. 또 데이터의 통합과 표준화를 바탕으로 인공지능(AI) 기술 등을 활용하여 질병 예측 및 예방, 의료 서비스 개선, 개인 맞춤형 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결과를 이끌어내고 있다.
전기차 관련 데이터도 마찬가지다. 산업 간 긴밀한 협력과 함께 표준화된 데이터 형식과 프로토콜, 인프라 구축 등의 투자가 필요하다. 이렇게 표준화된 데이터를 통합한 데이터 플랫폼이 구축된다면 데이터 활용 범위가 제조사나 충전기 업체로 국한되지 않고 개인, 사회, 국가 등 다양한 차원으로 퍼져나가 함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결국 우리나라 전기차 산업의 성장과 발전을 가속화하고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노력을 먹고 자란 상상력과 아이디어는 혁신이 되어 보은하는 것처럼 말이다.
박용희 | 소프트베리 대표
△1979년생
△목원대 정보통신공학과 졸업
△일본 동경 ㈜C-Square 연구원 근무
△㈜오큐브 개발팀 팀장 근무
△경기도 전기차 정책 심의위원
△경기도 GSEEK 교육방송 전기차분과 강사
△(사)한국전기차사용자협회(KEVUA)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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