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최고액권인 2000루피(약 3만2000원) 지폐의 폐지를 앞두고 현지 부자들이 보석상을 향하고 있다. 집에 현금을 가득 쌓아뒀던 부자들은 이를 은행에 저축하기보다는 몽땅 써서 없애버리겠다는 태세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22일(현지시간) 인도 전역에서 금 다이아몬드 명품 등 사치품을 파는 가게들이 쇼핑객들로 붐비고 있다고 보도했다. 인도인들이 대거 보석 가게에 몰린 것은 보유한 2000루피 지폐를 소진하기 위해서다.
최근 인도중앙은행(RBI)은 오는 9월 말까지 2000루피권을 모두 회수한다며 시중에서 많이 유통되지 않는 2천 루피권을 은행에 예금하거나 다른 지폐로 바꿔야 한다고 발표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탈세 등 지하경제 문제를 해결하려는 취지다.
헌데 RBI는 이런 갑작스러운 조치를 발표하면서 한 번에 2000루피권을 교환해주는 금액을 최대 2만루피, 고작 지폐 열 장으로 제한했다. 2000루피권을 다수 보유한 사람은 앞으로 네달여간 은행을 수시로 드나들어야만 현금 재산을 유지할 수 있는 셈이다. 또 조세당국으로부터 집에 많은 현금을 보관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을 요구받을 수 있다는 부담감도 있다.
결국 많은 이들은 예금하기보다 2000루피권을 들고 보석 가게에서 물품을 사는 방식을 택했다. 이에 따라 인도에서는 금과 은의 가격이 오르고 있다고 더타임스가 전했다.
2000루피권이 갑자기 인기 있는 지급 수단이 된 곳은 사치품 점포뿐이 아니다. 많은 인도인이 주유소에서 차에 기름을 넣은 뒤 2000루피짜리 지폐를 내고 있다. 한 주유소 운영자는 현지 언론 힌두스탄타임스에 "예전에 일일 판매에서 2천 루피권은 1∼2%에 불과했고, 나머지 지급 수단은 신용카드나 직불카드였다"며 "지금은 이것(2000루피권)이 80% 수준으로 뛰었다"고 밝혔다.
인도에서 2000루피 지폐는 지난 2016년 11월 화폐개혁과 함께 등장했다. 당시 인도 정부는 검은돈의 유통을 막겠다며 전격적으로 화폐 개혁을 단행해 시중 유통 현금의 86%를 차지하던 500루피(약 8000원), 1천 루피(약 1만6000원) 지폐 사용을 일시에 중지하고 2000루피권을 도입했다. 그러나 인도 정부는 2000루피권도 부정 축재, 돈세탁, 탈세 등에 널리 활용된다고 의심하면서 점차 유통을 줄였으며 2019년부터는 새 지폐를 찍어내지 않고 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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