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가우디 성당과 천진암

입력 2023-05-23 18:02   수정 2023-05-24 00:15

1926년 6월 7일 노년의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는 산책에 나섰다가 트램에 치였다. 사람들은 행색이 초라한 그를 노숙자로 오해하고 방치했다. 병원에 실려 갔지만 다음날에야 그가 가우디임이 확인됐다. 사흘 뒤 그는 전 재산을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성당)에 기부할 것과 장례 행렬을 만들지 말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떠났다. 두 번째 유언은 지켜지지 않았다. 장례식 날 그의 관을 따르는 행렬이 바르셀로나 시가지를 가득 메웠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별칭은 ‘가우디 성당’이다. 1882년 착공한 뒤 1년 만에 첫 수석건축가가 사임해 감독이던 가우디가 수석건축가를 맡았다. 당시 31세였던 가우디는 독신으로 살면서 죽는 날까지 43년간 성당 건설에만 몰두했다.

해가 질 무렵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들어서면 황홀경 그 자체다. 노을빛이 얼기설기 높이 뻗은 나뭇가지를 닮은 기둥 사이로 성당 내부 곳곳을 비춘다. 마치 거대한 숲에 들어선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하늘과 별을 담은 천장, 태양 빛의 이동에 따라 색과 빛이 달라지도록 한 스테인드글라스 모두 가우디의 설계다. “자연은 신이 만든 건축이며 인간의 건축은 그것을 배워야 한다”는 그의 건축 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유네스코는 가우디 건축물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하며 “인간의 창조적 천재성이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극찬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141년째 공사 중이다. 가우디 100주기인 2026년 완공이 목표다. 외신에 따르면 완공 시점이 또 미뤄질 수 있다고 한다. 입구용 대형 계단 건설을 위해 1000여 가구의 퇴거가 필요해 스페인 총선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한국에도 100년 성당 프로젝트가 있다. 1985년 한국천주교회 발상지인 천진암 성지 옛터에 2079년 완공을 목표로 성당을 착공했다. 천진암 성지는 1779년 유학자 정약용, 이벽, 이승훈 등이 모여 서학 서적을 읽던 장소다. 전 세계에 유례없는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로 의미가 깊다. 한국 천주교는 선교가 아니라 국민 스스로 학문(서학)을 받아들여 자생한 독특한 역사를 갖고 있다. 신분제가 공고한 조선 사회에서 ‘만민 평등’을 외치며 마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전설리 논설위원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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