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핸드백 회사마저…커지는 파산 공포

입력 2023-05-23 18:07   수정 2024-09-06 17:07

핸드백 브랜드 ‘앤클라인’으로 유명한 성창인터패션은 지난달 21일 서울회생법원에서 파산선고 결정을 받았다. 1990년 핸드백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로 출발한 이 업체는 한때 여성복 사업에 진출하는 등 토종 패션업계를 대표하는 강소기업으로 꼽혔다. 코로나19 사태로 수출길이 막혀 2020년 법정관리에 들어갔으나 7개월 만에 회생절차를 조기 졸업하는 저력도 보여줬다. 하지만 지속된 자금난으로 경영 정상화에 실패하면서 결국 2년여 만에 청산절차에 들어갔다.

자금난으로 도산 위기에 몰린 기업들 가운데 법정관리를 통한 재기 대신 파산을 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고금리로 대출 부담이 커진 데다 채무 조정을 거쳐도 회사 운영을 담보할 수 없을 정도로 경영 환경이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오는 9월 코로나 피해 중소기업·자영업자에 대한 대출 상환유예 조치까지 종료되면 파산이 회생보다 많아지는 ‘데드크로스’가 사상 처음 현실화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회생절차 비용조차 부담”에 파산신청
23일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올해 4월 서울회생법원을 비롯한 14개 법원에 접수된 법인파산 신청은 134건으로 집계됐다. 2013년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후 월간 기준으로 가장 많은 건수다. 전년 동기(80건)보다 67.5% 늘었다.

지난달 법인파산 신청은 3개월 만에 법인회생 신청을 앞질렀다. 올해 1월 법인파산은 105건, 법인회생은 84건으로 파산 신청이 회생 신청보다 많았다. 2월에는 법인파산 100건, 법인회생 118건으로 회생 신청이 더 많았으며 3월에는 법인파산·회생 신청 모두 121건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법인회생은 113건으로 전월보다 줄어든 반면 파산 신청은 급증했다.

자금난으로 파산 위기에 처한 기업은 통상 채무를 조정해 회사를 살리는 회생절차를 고려한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대출로 연명해온 기업들이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 위기’ 속에 고정비 부담까지 크게 늘자 사업을 접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도산 전문 변호사는 “회생법원의 공동관리인 지정 등 회생절차를 수행하기 위한 법률 서비스 비용조차 부담하기 어려운 기업들은 파산을 택할 수밖에 없다”며 “아까운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9월 위기설’에 “파산 더 늘 것”
법조계에선 회생·파산(연간 기준)의 데드크로스가 올해 사상 처음 현실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2021년엔 법인파산 신청이 955건, 법인회생이 1191건으로 회생 신청이 더 많았다. 지난해엔 법인파산 1004건, 법인회생 1047건으로 그 차이가 43건으로 좁혀졌다. 업계에선 회생폐지 절차를 거쳐 최종 파산에 이르는 법인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파산기업 수는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올 하반기 코로나 피해 중소기업·자영업자 대출 상환유예 조치가 종료되는 것도 업계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2020년 5월부터 대출 특별 만기 연장 및 상환유예 조치를 시행해왔다. 만기 연장 조치는 자율협약을 통해 2025년 9월까지 연장할 수 있지만 상환유예는 9월에 종료된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은행의 코로나19 만기연장·상환유예 대출 잔액은 37조6000억원에 달한다. 5대 은행의 4월 말 기준 기업대출 연체율은 0.328%로 1년 새 0.118%포인트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를 지낸 전대규 변호사는 “코로나 이후 경기 침체가 심화되며 특히 중국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의 사업 여건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며 “내실 있는 기업들은 인수합병 등을 통해 자구책을 찾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파산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했다.

민경진/박시온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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