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난으로 도산 위기에 몰린 기업들 가운데 법정관리를 통한 재기 대신 파산을 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고금리로 대출 부담이 커진 데다 채무 조정을 거쳐도 회사 운영을 담보할 수 없을 정도로 경영 환경이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오는 9월 코로나 피해 중소기업·자영업자에 대한 대출 상환유예 조치까지 종료되면 파산이 회생보다 많아지는 ‘데드크로스’가 사상 처음 현실화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법인파산 신청은 3개월 만에 법인회생 신청을 앞질렀다. 올해 1월 법인파산은 105건, 법인회생은 84건으로 파산 신청이 회생 신청보다 많았다. 2월에는 법인파산 100건, 법인회생 118건으로 회생 신청이 더 많았으며 3월에는 법인파산·회생 신청 모두 121건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법인회생은 113건으로 전월보다 줄어든 반면 파산 신청은 급증했다.
자금난으로 파산 위기에 처한 기업은 통상 채무를 조정해 회사를 살리는 회생절차를 고려한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대출로 연명해온 기업들이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 위기’ 속에 고정비 부담까지 크게 늘자 사업을 접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도산 전문 변호사는 “회생법원의 공동관리인 지정 등 회생절차를 수행하기 위한 법률 서비스 비용조차 부담하기 어려운 기업들은 파산을 택할 수밖에 없다”며 “아까운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 하반기 코로나 피해 중소기업·자영업자 대출 상환유예 조치가 종료되는 것도 업계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2020년 5월부터 대출 특별 만기 연장 및 상환유예 조치를 시행해왔다. 만기 연장 조치는 자율협약을 통해 2025년 9월까지 연장할 수 있지만 상환유예는 9월에 종료된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은행의 코로나19 만기연장·상환유예 대출 잔액은 37조6000억원에 달한다. 5대 은행의 4월 말 기준 기업대출 연체율은 0.328%로 1년 새 0.118%포인트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를 지낸 전대규 변호사는 “코로나 이후 경기 침체가 심화되며 특히 중국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의 사업 여건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며 “내실 있는 기업들은 인수합병 등을 통해 자구책을 찾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파산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했다.
민경진/박시온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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