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져보면 경제성장의 원리도 이와 비슷하다. 잘사는 나라가 되려면 위기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더글러스 노스는 1950년부터 2004년까지 188개 나라의 경제성장률을 선·후진국으로 나눠 분석했다. 호황기 연평균 성장률은 선진국이 3.9%, 후진국이 5.4%였다. 그러나 불황기 연평균 성장률은 선진국이 -2.3%, 후진국이 -4.9%였다. 전체 기간에서 불황기가 차지하는 비중도 선진국이 16%, 후진국이 34%다. 즉, 후진국이 경제성장에 실패한 원인은 너무 심하게, 그리고 오래 불황을 겪기 때문이다. 야구에 비유하면, 실책 후에 대량 실점하는 나라가 후진국이다.
노스는 위기를 잘 관리하려면 공정하고 효율적인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도는 간단히 말해 게임의 규칙이다. 현대 경제학은 어떤 규칙이 자원 배분과 위기관리에 효과적인지 연구해놨다. 그런데 이 규칙이 엉망이면, 예를 들어 위기 때 생산적인 기업이 아니라 뇌물을 많이 준 기업이 정부 지원을 독차지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남은 기업이 경제를 침체 속으로 더 깊숙이 밀어넣을 것이다. 고질적인 정경유착 탓에 장기적 경제성장에 실패한 남미 나라들이 대표적 사례다.
잘 작동하는 제도는 정치를 통해 만들어진다. 국민이 선출한 대표자가 가장 중요한 제도, 즉 법을 만들고 집행한다. 대표자의 역량에 따라 제도의 수준도 결정된다. 이때 선거의 딜레마가 문제다. 당선되려면 유권자 표를 얻어야 하는데, 그 유권자는 집단 이기주의에 휘둘리고, 합리적 정책보다 감성적 선동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선거가 있는 한 포퓰리즘도 항상 존재한다. 그래서 정당이 중요하다. 책임감 있는 정당은 강령, 행동규범, 정책 등을 통해 여론이 반대해도 해야 할 일과 여론이 찬성해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해둔다. 공정한 제도의 시작은 책임감 있는 정당일 수밖에 없다.
한국은 현재 심각한 복합위기 상태다. 유례가 없는 빠른 인구 감소, 신냉전으로 불리는 지정학적 안보 위기, 정치·경제·사회 모든 측면에서 심화하는 양극화 등은 민족의 장기적 생존까지 위협할 정도다. 이 위기들은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는다. 위기관리 역량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제도가 흔들리면 걷잡을 수 없이 후진국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현 양당을 보고 있자면 한숨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여당이 돼 지난 1년간 한 일이 당 대표를 둘러싼 내부 권력투쟁뿐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더 심각하다. 이재명 씨를 위한 방탄 국회, 막무가내 국무위원 탄핵, 암호화폐 투기를 노린 입법 의혹 등 위기관리는커녕 위기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놈 저놈 다 문제”라는 한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책임 정당이 성장해야 한다. 양당에서는 쇄신 노력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최근 이슈가 된 제3지대 신당이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물론 현실적 비관론이 많다. 그렇지만 위기를 대비하는 투자라고 생각하면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양당에도 자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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