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스타트업의 겨울, 그 와중에 탈잉은 유독 추웠습니다. 작년 하반기부터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김윤환 탈잉 대표가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온·오프라인 클래스 플랫폼 탈잉은 투자금이 마르면서 지난해 11월 직원 80%를 감원했다. 김 대표는 “뼈와 살을 깎아내면서 살아남아 작년 12월부터 월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며 “멋지게 턴어라운드해 업계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투자 혹한기에 감원과 사업부 축소 등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한 스타트업들이 다시 반전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덩치와 운영 비용을 크게 줄인 이들 회사는 재무적 수명을 늘리면서 추가 투자 유치와 하반기 실적 개선을 통한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
○6개월 전 감원한 회사들 지금은…
24일 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국내 최대 다중채널네트워크(MCN) 기업인 샌드박스네트워크가 운영해온 브랜드 커머스 플랫폼 미미즈는 지난달 28일 서비스를 종료했다. 크리에이터 굿즈 등의 상품을 제작해 판매하던 플랫폼이다. 이필성 대표가 지난해 11월 비상경영을 선포한 뒤 샌드박스네트워크는 비주류 사업부를 매각·정리하고 있다. 두 달 전엔 e스포츠 자회사인 SBXG(옛 샌드박스게이밍) 지분 60.59%를 포바이포에 78억6000만원을 받고 팔았다.
샌드박스네트워크 관계자는 “추가 투자가 필요한 사업부는 정리하고 MCN 본연의 비즈니스에 집중하면서 현금 창출 능력 지표인 EBITDA(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가 흑자 전환에 거의 도달했다”며 “지금까지도 사업부 정리에 따른 일시적 비용이 발생하고 있지만 하반기엔 정비가 완료될 것”이라고 했다. 캐시카우인 광고 사업이 경기 위축 국면에도 전년보다 성장한 게 긍정적 신호라고 회사 측은 여기고 있다. 투자 유치 없이도 성장할 수 있는 수익 구조를 만드는 게 목표다.
경영 악화로 직원 대부분을 내보내야 했던 탈잉은 월 기준 흑자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탈잉은 누적 25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한때 관심을 받았지만 수익성이 악화해 지난해 말 대규모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에 집중했던 서비스를 B2B(기업 간 거래) 중심으로 전환하고 튜터 대상 정산 문제를 해결했다. 김 대표는 “수십억원 적자를 보던 회사의 바퀴를 멈추고 흑자로 전환하는 데 많은 에너지가 들었다”며 “2분기부터 이익폭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하반기엔 의미있는 성과를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투자 유치로 재기 발판 마련
구조조정을 통해 비용을 줄인 스타트업들은 재무적으로 숨통을 틔워줄 투자자를 찾고 있다. 반려동물 플랫폼을 운영하는 핏펫은 동화약품으로부터 50억원 규모의 투자를 받는 데 성공했다. 지난 1월 220명이던 직원 규모를 110명까지 줄이는 등 경영 효율화 작업을 벌인 뒤다. 핏펫은 반려동물 전문 보험사 설립 등 준비했던 신사업 추진 시기를 무기한 미루고 당장 매출이 나오는 커머스 분야에서 수익성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핏펫 관계자는 “경영 효율화 작업을 바탕으로 다음달 추가 투자 유치를 마무리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신선식품 유통 스타트업 정육각은 신한캐피탈로부터 빌린 320억원의 단기자금대출 상환을 최근 재연장했다. 지난해 11월 만기 연장을 위해 김포 본사를 담보로 제공했던 정육각은 이번 재연장으로 본사 매각이나 공장 셧다운 등 단기 위기 상황 발생 우려를 일단 해소했다. 정육각은 지난해 말 270명이던 직원을 140명으로 감원했다. 김재연 정육각 대표는 “정육각의 역량을 활용해 작년 인수한 초록마을의 수익 개선과 제품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초록마을의 단점으로 지적돼 왔던 정보기술(IT)과 물류, 데이터 등 인프라를 개선하는 게 핵심이다. 다음달 마이크로소프트(MS) 애저 클라우드로 시스템 교체가 완료되면 데이터 폭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다만 구조조정 후 수익성이 개선됐어도 시장 경색 국면이 길어지면서 당분간 추가 투자를 받기가 쉽지 않다는 게 이들 스타트업 앞에 놓인 문제다. 지난 1분기 국내 벤처투자액은 8815억원으로 전년(2조2214억원)보다 60% 줄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투자 혹한기가 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커 당분간은 허리띠를 조이면서 버텨야 하는 시기”라며 “추가 구조조정을 하기 어려운 회사 중에선 어쩔 수 없이 문을 닫는 곳도 생길 것”이라고 했다.
○“스타트업끼리 재기 도와야”
스타트업들은 공격적인 신사업 확장 대신 기존 사업의 수익성을 높이는 데 집중하는 추세다. 클래스101은 최근 직원 10%가량을 감원하면서 오프라인 사업부를 축소하고 온라인 구독 서비스에 역량을 모으고 있다. 클래스101 관계자는 “해외 사업 부문도 규모를 줄였다”고 말했다. 직방은 월세 납부 등 입주민 서비스를 하는 우리집서비스(직방홈)사업부를 스마트홈 사업부로 흡수통합했다.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설문조사에 따르면 창업자의 52%는 투자 혹한기 대비책으로 기업 비용을 절감할 것이라고 답했다. 48%는 흑자 사업에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비용 절감과 사업부 정리 등으로 인한 내부 불만을 어떻게 관리하고 턴어라운드 에너지로 전환할 것인지는 각 회사 역량에 달렸다. 꼭 필요한 핵심 직원까지 줄이탈하거나 업계 평판이 나빠져 투자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내부에 부정적인 분위기가 생길 수밖에 없는데 이를 어떻게 최소화하느냐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투자 혹한기에 스타트업들이 서로 도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 서비스 기업 고위드는 스타트업 대상 기금 조성 캠페인인 ‘G허들링’을 최근 시작했다. 성장 가능성이 있지만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스타트업의 재기를 돕는 모금 운동이다. 2년 내 50억원의 기금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다. 경영난을 겪는 스타트업에 무이자로 1억원가량을 대출해주고 이 기업이 성장 지표 개선 또는 투자 유치를 달성했을 때 원금을 회수한다. 보안업체 체커, 전자계약 전문업체 모두싸인 등 7개 스타트업이 기금 조성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