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스위스 노리는 中의 '조용한 침공'

입력 2023-05-25 17:53   수정 2023-05-26 00:26

마터호른으로 오르기 위한 ‘베이스캠프’인 체어마트. 청정한 공기를 유지하기 위해 전기차만 다닐 수 있는 이 도시는 요즘 건설 소음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 도심에서나 볼 법한 거대한 크레인까지 등장했다. 크레인이 하늘을 가로질러 만들어낸 기괴한 수직의 선이 마터호른의 실루엣을 관통하는 모습을 보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스위스 단체 관광 허가한 중국
‘관광 대국’ 스위스가 새 단장에 한창인 이유는 중국인을 비롯해 해외 관광객의 귀환을 수용하기 위해서다. 최근 글로벌 관광산업의 흐름은 스위스에 우호적이다.

유럽에선 강력한 관광 라이벌 프랑스가 연금 개혁으로 인한 파업 등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동유럽 관광산업에 치명타를 입히고 있다.

무엇보다 스위스 정부가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는 요소는 중국이다. 올 1월 중국은 자국민의 해외여행을 일부 허용했다. 20개국이 여행 가능 국가에 포함됐다.

유럽에선 두 곳이 선정됐는데, 그중 하나가 스위스다. 스위스는 중국인 입국자에 대한 방역증명서 제출 의무를 없애겠다고 하면서 중국의 ‘간택’을 받았다. 스위스를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은 2013년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00년 연간 20만 명에서 2019년엔 185만 명까지 폭증했다. ‘유커’들의 스위스 ‘러시(쇄도)’는 그만큼 수요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 정부의 의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이 영구 중립국인 스위스를 관광을 미끼로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다는 얘기다. 유럽연합(EU)이 한목소리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할 때 마지막으로 캐스팅보트를 행사한 곳이 스위스다.

스위스는 낮은 법인세 등을 내세워 적극적인 해외 기업 유치 전략을 펴왔다. 냉전 시대에도 진영을 가리지 않았다. 러시아의 거대 자원 기업 중 상당수가 스위스에 둥지를 틀고 있다. 러시아 원자재 거래의 약 80%가 스위스를 거쳐 간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본부는 스위스 로잔에 있다.

코로나 이전만 해도 중국은 ‘일대일로’ 정책을 강력히 추진했다.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유럽을 잇는 해상 실크로드를 구축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겠다는 중국몽(中國夢)의 일환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차이나 머니’를 앞세워 세계 전략 지역에 ‘조용한 침공’을 감행했다.
재개되는 중국의 확장 전략
호주가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은 호주 내 중국인들을 상대로 정계, 학계, 언론, 노동계 등에 대한 전방위 로비를 통해 조직적으로 친중 여론을 조성하는 데 성공했다. 2019년까지만 해도 호주 사회에 ‘명나라 정화 함대의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최초 상륙설’이 진실인 것처럼 굳어졌을 정도다.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은 이런 중국의 열망을 일시 중단시켰다. 호주는 미·중 경제 전쟁에서 명확히 미국의 편으로 ‘원대 복귀’했다. 코로나가 끝을 향해 가면서 중국의 세계 확장 전략도 본격적으로 재개될 전망이다.

미국 조 바이든 정부와 경제 전쟁에서 일방적으로 패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시진핑의 중국’은 우군을 찾는 데 모든 역량을 동원할 가능성이 높다. 스위스로 몰려가는 수많은 중국인 관광객의 행렬은 중국 정부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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