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발전도 그렇게 보면 개발 방향에 이견이 적어진다. 하지만 한국 경제를 견인하고 K문화의 국제화를 이끄는 ‘기관차 서울’에도 은근히 장애물이 많다. 집적의 이면, 고밀도에서 파생되는 주거·교통·고물가 난제들은 걸림돌 내지는 부작용이다. 그럼에도 기술 발달에 힘입어 수직도시·지하도시로 발전하고, 광역교통도 보완돼 개선되고 있다.
그다지 주목받지는 않지만 ‘문화재 규제’도 큰 장벽이다. 특히 노후 도심의 변신을 가로막는 최대 요인이다. 대도시일수록 역사가 길기 마련이다. 사람 산 흔적도 많을 수밖에 없다. 서울 강북 구도심이 그렇다. 좀체 변하지 않는 광화문 일대, 퇴락하는 종로의 부활을 막는 게 일차적으로 문화재 주변 고도 규제다.
4대문 안에 땅을 파면 사람 산 흔적이 나오지 않는 데가 없다. 문제는 질그릇 조각이라도 나오는 순간 공사장이 문화재조사단에 넘어간다는 점이다. 건설이야말로 ‘시간이 돈’인데 부지하세월이 된다. 종로통 신설 건물 지하에 엉성한 ‘발굴현장 전시관’이 꾸며져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고도제한은 그런 비용 문제보다 더 치명적이다. 국가지정문화재 주변의 앙각(仰角)에 따른 일률적 높이 제한은 헌법보다 무섭다. 도심 진화를 막는 장벽 규제다.
문화재 보호도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과거가 미래를 막는다면, 나아가 역사와 미래의 공존을 막는다면 합리적으로 다시 볼 필요가 있다. 도쿄 왕궁 앞엔 200m 빌딩이 서 있는데 종묘 주변 세운상가는 구역별로 55m, 72m로 제한되는 게 우리 현실이다. 안 그래도 질기 조각이 나올 ‘위험’을 안고 어렵게 터를 파는데, 몇 층 올리지도 못하면 누가 개발 투자에 나서겠나. 앙각 규제로 기형이 된 남대문 옆 대한상의 건물을 보라. 이러면서 강남북의 개발 불균형을 개탄할 수 있나.
유적을 보존해도 융통성이 필요하다. 예컨대 풍납토성 몽촌토성이라면 터 보전 정도면 될 것이다. 주택 담장 높이만한 토성 흙담길이 한성백제 때 쌓은 것이라고 누가 믿겠나. 그런데도 문화재청이 터로 남은 흙더미 주변 일대에 ‘토성관리계획’을 세워 송파구 손발을 묶어버리니 해당 구청이 행정소송에 이어 헌법재판소로 달려간 것이다. 쟁송 발생 2년째, 아직도 2심 법원에 있는 김포 장릉 아파트 공사 중단 조치도 마찬가지다. 무덤 500m 언저리의 공동주택이 계양산 경관을 가린다는 게 중단 사유였다. 보존해도 파주 민통선 안 덕진산성이나 연천의 호로고루 등 고구려 성터 정도로 관리하면 쉽게 공감된다. 사실 이들 고구려 4성도 현지를 답사해보면 전망 좋은 강 언덕에 남은 돌더미가 전부다. 도심과 외진 강변을 같은 잣대로 관리하며 보존하겠다면 답이 없다.
최근 서울시가 문화재 고도규제 완화에 나섰다. 조례를 바꿔 고도규제를 완화해 구도심의 진화를 도모한다는 취지다. 오세훈표 강남북 균형발전 전략이다. ‘협의권’을 가진 문화재청이 서울의 경쟁력과 도시의 진화라는 개념에 주목하며 건설적으로 응할 필요가 있다.
과거와 미래의 공존이 절실하다. 보존과 개발이 적대적이 될 이유가 없다. 타협 행정은 어렵지 않다. 옛것 보호에 과도하게 매달리면 유사 종교 수준의 환경 아젠다처럼 된다. 퇴락하는 도심을 진화시키며 합리적 수준의 개발이익 환수로 문화재 보호에 쓰는 게 이성적이다. 국보 남대문의 누각을 낭인들 술판 천지로 방치했다가 광인의 취중 방화로 태워버린 뼈아픈 오류도 개발 때문이 아니었다. 재개발 부담금으로 CCTV와 열감응 장치라도 보완하는 게 더 현실적 보호책이다. 비타협적·맹목적 유산 보호도 환경교조주의만큼 경계 대상이다. 문화재 주변 고도규제가 완고할수록 강남만 계속 뻔쩍뻔쩍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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