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5일 “한국은 이미 장기 저성장 구조로 와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 문제를) 재정·통화 등 단기정책을 통해 해결하라고 하는 건 나라가 망가지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동 연금 교육 등 구조개혁이 정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경제의 장기 저성장 문제를 구조개혁으로 풀지 않고 단기 처방으로 해결하려는 분위기를 두고 쓴소리를 한 것이다.
이 총재는 25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장기적으로 저성장 국면이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한국은 저출산과 고령화가 워낙 심하다”며 이같이 답했다. 이어 “5년, 10년 내에는 노후 빈곤 문제가 큰 사회 문제가 될 것”이라며 “이 큰 트렌드를 벗어나기 위해선 빨리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회적 타협을 통한 구조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지를 모르는 게 아니라 이해당사자 간 타협이 너무 어려워 진척이 안 된다는 것”이라며 “특히 혜택을 보는 수요자가 아니라 공급자 중심으로 모든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 사례로 교육개혁을 들었다. 이 총재는 “우리는 고3 때 평생 전공을 정하는데 이는 말이 안 된다”며 “대학에 가서 여러 개 (전공을) 보고 결정해야 하는데 각 학과 정원을 모두 (대학 등) 공급자가 정하고 (교수 등) 이해당사자가 합의를 보지 못하니까 하나도 움직이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또 “연금개혁이 너무 중요한데 프랑스는 사회적으로 큰 갈등이 있지만 그래도 시작이라도 했다”며 “우리는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등) 모수에 대해 민감하니까 ‘빼고 얘기하자’는데 그러면 ‘하지 말자’는 얘기와 비슷하게 들릴 수 있다”고 꼬집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제외의 필요성도 시사했다. 이 총재는 “저출산, 노인 돌보미 이런 것을 생각하면 이민이라든지 해외 노동자를 어떻게 활용할지, 임금체계는 어떻게 할지 논의가 필요한데 그런 논의도 진척이 없다”고 했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지난 3월 외국인 가사근로자에겐 최저임금 적용을 없앤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가 논란이 일자 철회했다.
이 총재는 또 “한국 반도체 수출이 안 된다고 하는데 사실 서비스업에서 수출할 게 엄청나게 많다”며 “의료산업 국제화가 한 걸음도 못 나아가는 사이에 태국과 싱가포르는 이미 지역 의료 허브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구조적으로 어려운 것을 해결하지 못하니까 결국은 재정으로 돈 풀어서 해결해라, 금리 낮춰서 해결해라 등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으로 부담이 다 온다”며 “절대로 그래선 안 된다”고 했다. 이 총재는 “재정·통화정책은 단기적으로 경제를 안정화하는 것이고, 한국 경제가 잘되기 위해선 사회적 타협의 해결을 통한 구조개혁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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