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만 배불린다"…리튬 돈 되자 '국영화', 칠레의 오판?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입력 2023-05-26 08:19   수정 2023-05-28 00:01


칠레가 지난달 발표한 '국가 리튬 전략'에 대해 "제 발등 찍는 꼴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칠레 정부의 리튬 국영기업 설립 등 국영화 방침은 최근 '하얀 석유'를 넘어 '하얀 황금'으로 불리기까지 하는 리튬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해 나라 곳간을 채우겠다는 구상이다.

리튬은 전기자동차 배터리의 핵심 원료다. 전 세계가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기차 양산에 속도를 내면서 최근 리튬 확보전이 불붙고 있다. 이런 가운데 칠레의 국영화 계획이 발표되자 '그린 보호주의(Green Protectionism)'라는 비판과 함께 그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영화 발표 직후…시총 폭락한 칠레 리튬기업들
지난달 20일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사진)이 리튬 국영화 구상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리튬 국영기업을 설립하고 ▲앨버말, SQM 등 민간기업의 기존 계약기간을 존중해 리튬 국영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친환경 리튬 채굴 기술(DLE) 사용 등을 통해 지속가능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앨버말과 SQM은 칠레에서 리튬 사업을 영위하는 대표 민간기업들이다. 지난해 기준 전 세계 기업별 리튬 생산량으로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정부 개입 소식이 알려지자 두 회사의 주가는 급락했다. 두 기업의 시가총액이 총 85억달러(약 11조원) 증발했다. 투자자들이 국가 주도 '바가지 씌우기' 등을 우려하면서 주식 투매에 나선 것으로 풀이됐다.


투자은행 캐너코드 제뉴이티의 레그 스펜서 애널리스트는 "칠레가 스스로 발등을 찍었다"며 "이 정책은 더 많은 개발 기회를 열어주지만 동시에 각종 불확실성 때문에 반대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SQM에서 30년 가까이 일했던 한 컨설턴트는 "기업들이 호주, 아르헨티나, 브라질, 아프리카 지역의 리튬 개발 기회를 알아보러 떠날 것"이라며 이들 국가가 칠레의 국영화로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리튬은 주로 암석형과 염수형 두 가지 형태로 발견된다. 생산 방식도 광산에서 채굴하거나 염호(소금물 호수)에서 추출하는 두 가지로 나뉜다. 칠레에는 리튬 매장량이 풍부한 것으로 추정되는 염호가 60개 이상이다. 앨버말과 SQM이 현재 개발 중인 아타카마 염호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최근 들어 호주의 리튬 광산에 각각 37억달러, 14억달러 가량을 투자했다. 칠레 정부의 국영화 논란 등 잡음이 끊이질 않자 탈(脫)칠레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방 기업들 떠나가고…中기업만 칠레산 리튬 싹쓸이하나
설상가상으로 칠레 정부의 국영화 시도는 의회 단계에서 대폭 수정되거나 무산될 수 있다. 칠레 정부가 민간기업들의 리튬 프로젝트 지분을 51% 이상 사들이는 거래에서 협상 중재 임무를 맡은 막시모 파체코 코델코 회장은 "리튬 시장의 변동성 등을 고려하면 올해 안에 답을 내놔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호주, 아르헨티나 등 칠레를 대체할 수 있는 리튬 매장국들이 많은 점, 리튬 배터리를 대신할 수 있는 나트륨 이온 배터리 등이 새로 개발되고 있는 점 등은 서방의 칠레산 리튬 수요가 언제든 꺾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패스트마켓은 "작년 기준 세계 2위 리튬 수출국인 칠레는 이번 논란으로 2030년엔 중국, 호주, 아르헨티나에도 밀리는 4위 국가로 주저앉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칠레 경쟁국들은 리튬 개발 관련 해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최근 지방정부 차원에서 리튬 프로젝트를 승인하도록 권한을 위임했다. 아프리카 국가들도 광물 프로젝트 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기 시작했다. 일각에선 칠레의 국영화 시도는 결국 중국 기업들에만 호재가 될 것이란 주장도 제기됐다.

한 리튬업계 관계자는 "(국가로부터 자원 확보를 지원받는) 중국 기업들은 수익을 내는 것보다 리튬 확보 자체가 목적"이라면서 "중국 기업들만이 칠레 정부가 바가지를 씌우든 아니든 상관없이 칠레산 리튬을 싹쓸이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들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칠레 정부의 국영화 전략이 공식화된 지 며칠 만에 중국 전기차 제조사 BYD는 칠레 북부에 2억9000만달러 규모 배터리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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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주요국들은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요? 에너지·광물 확보 전쟁의 양상은 어떻게 펼쳐질까요?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무엇일까요?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에서 다루겠습니다.
★친환경·에너지·광물 분야 전문가님들의 지적과 조언, 제보는 늘 환영합니다.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를 통해 건설적인 공론의 장이 열린다면, 어쩌면 우리나라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을테니까요.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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