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악단' 룩셈부르크필이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줬다[리뷰]

입력 2023-05-26 18:35   수정 2023-05-26 23:54



지난 2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앙코르 연주까지 끝나자 단원들은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서로를 얼싸안았다. 공연을 마치고 단원끼리 서로를 격려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이렇게까지 동료애를 드러낸 것은 이례적이다. 아마 룩셈부르크필하모닉이기 때문에 볼 수 있었던 장면이었을 것이다.

룩셈부르크필은 20여개 국가 출신의 단원으로 이뤄져 있다. 이들은 조국과 모국어를 따지지 않고 오로지 하모니 하나를 위해 뭉쳤다. 만족스런 공연을 했을 때의 감동이 여느 악단과 다를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들의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20년 만에 한국을 찾은 룩셈부르크필은 국내에 비교적 덜 알려져 있었다. 독일 프랑스 벨기에와 이웃했지만 룩셈부르크라는 나라 자체도 친숙하지 못하다. 그래서 이번 공연의 화두는 ‘첼로 신동’ 한재민(17)의 협연이었다. 그러나 룩셈부르크필은 이날 공연에서 ‘아름다움의 극치’를 선보이며 기대치 못한 선물을 안겨줬다.



한재민은 역시 한재민이었다.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실력을 보여줬다.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을 연주한 그는 오케스트라를 압도하기보다 맞춰가는 앙상블로 돋보였다. 스타로써 존재감을 확연하게 드러내주길 기대했던 청중이라면 아쉬웠을 대목이지만 그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한재민은 지휘자 구스타프 히메노(47)와 수시로 눈을 맞추며 프레이징을 마무리했다. 마지막 3악장에서 악장(바이올린)과 어울린 2중주는 마치 ‘신사들의 논쟁’처럼 강렬하지만 젠틀했다. 한재민은 깊은 호흡으로 애절한 선율을 노래했고, 에너지 넘치는 리듬으로 영웅적인 드보르작을 표현했다. 그는 마지막음이 사라진 뒤에도 미세하게 비브라토를 지속하며 소리의 잔향을 느꼈다.

룩셈부르크필의 진가는 2부의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에서 여실히 나타났다. 이 곡은 전문가는 혹평하고 대중들은 사랑하는 곡의 전형으로 차이코프스키 역시 이 곡을 두고 “지나치게 꾸며졌다”며 자신없어 했다. 하지만 대중의 사랑은 열렬했다. 직관적으로 와 닿는 호소력 짙은 멜로디,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은 클래식을 알지 못하는 ‘클알못’ 대중도 흠뻑 빠져들게 한다.

이런 작품의 맹점은 다소 통속적이거나 감상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지휘봉을 잡은 히메노는 양 팔을 최대한 활용해 충분히 표현하되 결코 지나치지 않게 음악을 조절했다. 실크빛 현의 질감, 시원하고 맑았던 목관의 울림, 따뜻하고 정제된 금관 파트 모두 그의 지휘에 따라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는 소리의 조화(하모니)를 구현했다.



특히 관악기 주자들의 연주력이 돋보였다. 1악장부터 클라리넷, 바순에 이어 플룻 등 목관 주자들이 다채로운 색의 꽃바구니처럼 돌아가며 음색을 뽐냈다. 특히 2악장 도입부에서 호른 주자는 소리가 새거나 빈약하지 않게 기나긴 주제 선율을 이어갔다.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서정적인 이 선율은 호른의 역할이 너무도 중요한 부분이다. 마지막 악장에서는 극도로 고조되며 합주가 이어지는데 모든 파트가 혼신의 힘을 다했다. 팀파니 주자는 함께 흥분하기보다 적절한 타이밍과 볼륨으로 균형을 잡았다.

룩셈부르크필의 색채는 지난달 내한한 독일 브레멘필과 대조적이었다. 두 악단 모두 베를린필, 뉴욕필처럼 국내 관객들에게 널리 알려진 해외 악단은 아니지만 최근 내한으로 국내 관객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브레멘필이 향토적이고 지역색이 강한 유서깊은 도시라면, 룩셈부르크필은 세련된 국제도시 같았다.

프로그램에서도 그들의 개성이 드러난다. 브레멘필은 ‘올 브람스’ 프로그램이었고, 룩셈부르크필은 드로르작과 차이코프스키를 연주했다. 두 작곡가는 모두 ‘역마살’이 있는 인물들이다. 체코 태생의 드로르작은 미국으로 망명했고, 러시아 출신 차이코프스키는 서유럽을 동경했으며 유럽 각지와 미국에서 연주 여행을 다녔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악단의 호연은 룩셈부르크의 풍경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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