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떼 칼럼] 슈베르트에 지친 날, 메탈을 듣다

입력 2023-05-28 17:50   수정 2023-05-29 00:07

하루 종일 소리의 질감을 갖고 씨름하는 날이 있다. 들꽃잎처럼 여린 소리와 그 꽃의 줄기처럼 강한 소리가 완벽한 비율로 공존해야 하는 슈베르트 판타지를 연습하는 날들이 그렇다. 활 털이 아슬아슬하게 줄을 간질거리는 마찰을 만들어 내려면 팔꿈치의 위치와 오른팔이 열리는 속도와 각도, 그리고 손안에서 느껴지는 활의 밸런스를 1g 단위로 느껴야 한다.

이런 날에는 신경이 머리끝까지 곤두선다. 아주 작은 소리까지 들어야 하는 귀에는 날이 선다. 오른팔을 계속 높게 들고 서 있다 보면 어깨에 경련이 온다. 무엇보다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마음을 견디기 힘들다. 이런 날엔 섬세하고 우아한 클래식 소리가 정말이지 지겨워 죽을 것 같은 순간이 온다.
용기와 자유 주는 헤비메탈
자, 로큰롤을 들어야 하는 시간이다. ‘메탈리카’ 같은 클래식 메탈밴드도 좋지만, 1988년생인 나는 ‘나인 인치 네일스’나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TM)’ 같은 랩, 힙합, 펑크, 일렉트로닉이 모두 섞여 있는 장르 메탈에 더 마음이 간다. 깊은 베이스 소리가 리듬의 그루브를 만들고, 그 위에 일렉트릭 기타의 시원하고 중후한 소리가 영혼을 울린다. 슈베르트로 인해 머리끝까지 올라갔던 긴장감이 점점 땅으로 내려온다. 바이올린을 켜면서 위로, 하늘로, 우주로 날아오른 머리는 거친 질감의 로큰롤이 수혈되면서 아래로, 땅으로, 지구로 돌아온다.

RATM의 데뷔 앨범은 반항아적인 사운드가 날것의 느낌으로 표현된 명반이다. ‘니가 하라는 대로는 안 해’란 가사처럼 그들의 사운드는 정제돼 있지 않으며, 분노로 가득 차 있고, 자유를 갈망한다. 이 불량한 반란자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나도 연주의 관습에서 벗어나 작곡자의 텍스트 자체를 나만의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를 얻는 것 같다.

RATM이 음악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아마도 상식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상에 대한 불만이리라.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게 이뤄지지 않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큼 화나는 일은 없으니까. 이런 좌절감을 표현하는 RATM의 음악적 방식은 반복이다. 이 앨범의 모든 곡은 파워풀하고 쫄깃한 기타 리프를 반복·변형·고조시키며 진행된다. 작곡자가 반복을 이용하는 건 같은 틀을 유지하면서도 이야기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나타내는 것이다.
마음 어루만지는 음악
이쯤 되면 RATM과 슈베르트의 궁합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마저 든다. 슈베르트 또한 무한 반복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간 데다 정치적으로 반골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정권에 저항하는 가곡을 만들기도 했고, 청년들의 모임을 제한하는 경찰에게 욕설을 내뱉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누군가 내 영역을 침범하는 날, 정당하지 않은 일을 감내해야 하는 날, 모든 것이 답답해 다른 세상으로 훌쩍 떠나고 싶은 날에는 RATM이나 슈베르트가 이끄는 판타지의 세계로 나를 맡겨보자. 내 안의 꼬인 감정을 풀어내는 방식은 중요하지 않다. 오늘을 살아내 내일로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 나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이라면 그것이 랩이든, 바이올린이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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