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에는 신경이 머리끝까지 곤두선다. 아주 작은 소리까지 들어야 하는 귀에는 날이 선다. 오른팔을 계속 높게 들고 서 있다 보면 어깨에 경련이 온다. 무엇보다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마음을 견디기 힘들다. 이런 날엔 섬세하고 우아한 클래식 소리가 정말이지 지겨워 죽을 것 같은 순간이 온다.
RATM의 데뷔 앨범은 반항아적인 사운드가 날것의 느낌으로 표현된 명반이다. ‘니가 하라는 대로는 안 해’란 가사처럼 그들의 사운드는 정제돼 있지 않으며, 분노로 가득 차 있고, 자유를 갈망한다. 이 불량한 반란자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나도 연주의 관습에서 벗어나 작곡자의 텍스트 자체를 나만의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를 얻는 것 같다.
RATM이 음악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아마도 상식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상에 대한 불만이리라.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게 이뤄지지 않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큼 화나는 일은 없으니까. 이런 좌절감을 표현하는 RATM의 음악적 방식은 반복이다. 이 앨범의 모든 곡은 파워풀하고 쫄깃한 기타 리프를 반복·변형·고조시키며 진행된다. 작곡자가 반복을 이용하는 건 같은 틀을 유지하면서도 이야기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나타내는 것이다.
누군가 내 영역을 침범하는 날, 정당하지 않은 일을 감내해야 하는 날, 모든 것이 답답해 다른 세상으로 훌쩍 떠나고 싶은 날에는 RATM이나 슈베르트가 이끄는 판타지의 세계로 나를 맡겨보자. 내 안의 꼬인 감정을 풀어내는 방식은 중요하지 않다. 오늘을 살아내 내일로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 나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이라면 그것이 랩이든, 바이올린이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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