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결선 투표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대선에서 승리해 재선에 성공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번 재선으로 2003년 첫 집권 이후 2033년까지 최장 30년에 달하는 사실상의 종신집권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재선을 바란 러시아는 안도하게 됐지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내 이단아에 골치를 앓아온 미국과 서방은 앞으로도 튀르키예와 불편한 동거를 계속해야 할 형편이다. 튀르키예의 권위주의 체제와 비정통적 경제정책도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여 민주주의 후퇴와 경제난 등 산적한 국내 문제 해결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같은 시간 국영 TRT 방송과 a뉴스 등 방송들도 일제히 에르도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투표 종료 직후부터 에르도안 대통령의 거처에 모여든 수천 명의 지지자들은 국기를 흔들며 환호했으며 에르도안 대통령은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달궜다. 이스탄불 시내에서도 지지자들이 차량 경적을 요란하게 울리며 에르도안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했다.
이후 튀르키예 선거관리위원회인 최고선거위원회(YSK)도 에르도안 대통령의 대선 결선투표 승리를 공식 발표했다. YSK 아흐멧 예네르 위원장은 국내외 투표함 99.43%를 개표한 결과 에르도안 대통령이 52.14%를 얻어 승리했다고 밝혔다. 공화인민당(CHP)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47.86%를 득표했다.
이에 따라 2018년 취임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2028년까지 추가로 5년간 집권하게 됐다. 중임 대통령이 임기 중 조기 대선을 실시해 당선되면 추가 5년 재임 가능한 헌법에 따라 2033년까지도 집권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 경우 2003년 총리로 시작된 그의 집권 기간은 30년까지로 연장된다.
선거 때마다 사분오열했던 야당도 이번에는 6개 당이 반(反)에르도안을 기치로 단일후보를 내세웠다. 에르도안 대통령 치하에서 탄압받아온 쿠르드족이나 이번에 처음으로 투표하는 500만 명에 달하는 유권자의 표심 역시 야당을 선택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을 정도로 모든 상황이 정권교체를 가리키고 있었다.
실제 선거 직전 여론조사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의 지지율은 40%대 초반에 머문 반면, 6개 야당 단일 후보인 공화인민당(CHP)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의 지지율은 40% 후반에서 50%를 넘나들었다.
일각에서는 클르츠다로을루 대표가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로 당선을 확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그러나 뚜껑을 열자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1차 투표에서 아깝게 과반에 미달한 49.52%의 득표율로 44.88%의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를 따돌렸다. 여기에 1차 투표에서 5.17%를 득표해 3위를 차지한 승리당 시난 오안 대표가 에르도안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결선투표를 앞둔 에르도안 대통령이 승기를 휘어잡았다.
1차 투표와 함께 실시된 총선에서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 연합이 600석 중 323석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한 것도 에르도안 대통령의 재선 가도를 든든하게 뒷받침했다.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이번 개표 결과에 대해 "이번 선거는 최근 수년간 가장 불공평한 선거 중 하나였다"면서도 "권위주의 정부를 바꾸려는 국민의 의지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국가 앞에 기다리는 어려움들에 대해 깊은 슬픔을 느낀다"며 "나는 나의 투쟁을 계속하겠다. 여러분도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계속해달라"고 당부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017년 개헌을 통해 부통령 및 법관 임명권, 의회 해산권, 국가비상사태 선포권까지 막강한 권한을 확보했으며, 이를 통해 행정부와 사법부, 입법부에 대한 통제를 확고히 했다. 나아가 대대적 숙청과 규제 작업을 통해 언론과 사회 전 분야까지 장악했다. 이렇게 다져온 통치 기반의 위력이 이번 대선에서 확인된 만큼 에르도안 대통령은 현재 체제를 유지하며 30년 초장기 집권을 본격 준비할 것으로 예상된다.
건국이념으로서 종교와 정치를 분리한 세속주의가 퇴색하고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강화해온 이슬람주의가 전면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초고물가와 경제난을 초래한 저금리 정책과 중앙은행에 대한 개입 등 비정통적 경제정책도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강력한 튀르키예를 목표로 한 지역 패권 추구 외교 노선과 함께, 친러시아 노선 및 서방과의 불편한 관계도 계속될 전망이다. 미국으로선 나토 내에서 튀르키예의 독자 노선에 따라 난처한 입장이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반면, 러시아로선 튀르키예와 경제협력을 지속하면서 서방의 제재 충격을 완화하는 등 숨통이 트이게 됐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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