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하골프의 한국 에이전시인 오리엔트골프는 올해 초 배우 이민정을 앰배서더로 발탁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골프 브랜드들은 종종 브랜드 자체를 홍보하기 위해 거액을 써 톱배우를 홍보대사로 위촉한다.
그런데 오리엔트골프의 속내는 조금 달랐다. 이민정에게 콕 집어 여성 클럽 라인업 인프레스 드라이브스타, 씨즈, 페미나를 대중에게 알리는 데 힘써달라고 했다. 오리엔트골프 관계자는 “홍보 모델을 물색할 때 여성 클럽을 가장 잘 알릴 수 있는 모델을 찾았다”고 했다. 오리엔트골프가 얼마나 여성 고객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골프 성수기를 맞아 용품사들이 ‘큰손’으로 자리매김한 여성 골퍼들의 마음을 잡으려는 베팅을 이어가고 있다. 야마하가 이민정을 앞세워 여심 공략에 나선 가운데 여성 클럽 강자 젝시오는 백화점 명품관 팝업스토어 개설로 프리미엄 이미지 굳히기에 나섰다. ‘아이언 명가’ 미즈노는 한국 여성 맞춤형 클럽으로 시장 탈환에 도전한다.
골프용품사들이 여성 골퍼 시장 공략에 나선 것은 엔데믹으로 골프시장이 빠르게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 속에도 여성 골퍼들의 구매력은 여전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골프 장르 전체(용품+웨어) 매출 중 여성 고객 비중은 2021년 70.1%에서 지난해 72.0%까지 올랐다. 올해도 1분기까지 72.8%의 비중을 보이면서 뚜렷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필드에서도 여성 소비자의 힘은 세다. 소비자 여론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이 지난해 골프 필드 경험자 3000명을 대상으로 한 ‘2022 골프산업 기획 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평균 라운드는 9.94회로 남성(8.27회)보다 많았다. 라운드를 가장 많이 한 계층도 50대 여성(11.25회)이었다.
이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선 브랜드 이미지가 중요하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골프매거진코리아가 1200명의 골퍼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여성 골퍼들은 클럽 구매 시 최우선 고려 사항으로 성능 다음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중시했다. 브랜드들이 마케팅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리엔트골프는 지난 수년간 여성 골퍼들의 구매력을 제대로 느낀 기업이다. 2018년 일본 본사가 여성용 클럽을 접으려고 할 때 본사를 설득해 오히려 제품군을 확장한 게 ‘신의 한 수’였다. 이갑종 오리엔트골프 회장은 “여성 골프시장이 블루오션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고 했다. 씨즈, 페미나 등 여성용 클럽 판매에 힘입어 지난해에는 국내 골프용품업계에서 ‘꿈의 숫자’로 불리는 매출 1000억원을 넘겼다. 여성용 클럽 판매액은 2020년 363억원에서 2년 만에 세 배가 됐다.
과거 여성용 클럽은 기존 모델에 ‘스펙’만 조금 변경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야마하, 던롭의 젝시오 등은 거액의 설계비를 들여 개발 단계부터 여성에게 철저히 초점을 맞춘다.
야마하는 아마추어 여성 골퍼들이 고민하는 비거리와 방향성에 집중했다. 신제품인 ‘씨즈 HM+’는 헤드 모양을 방향성에 초점을 맞춰 디자인했다. 드라이버의 무게중심을 헤드 외측으로 배분해 스위트스폿에 정확하게 맞지 않더라도 똑바로 날아갈 수 있게 하는 식이다. 여기에 관성모멘트(MOI)도 극대화해 컨트롤보다는 관용성에 집중했다. 또 스핀양도 남성 클럽보다 훨씬 줄여 비거리를 늘리는 데 신경썼다.
오리엔트골프는 올해부터 여성 골퍼를 위한 클럽 대여 서비스 ‘야마하 렌털 부티크’를 시작했다. 예비 구매 고객에게 무료로 20일간 풀세트를 대여해주는 서비스다. 3주 이내 교환·반품이 가능한 품질보증제도, 정품 등록을 마친 고객에게 명품 선물을 주는 ‘야마하 레이디스 골프 페스타’도 운영 중이다.
프리미엄 골프 브랜드 젝시오를 보유한 던롭스포츠코리아도 여성 골퍼들의 마음을 잡는 데 투자를 이어오고 있다. 골프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난 3월에는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점 1층 명품관에 골프 브랜드 최초로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이곳은 과거 신세계가 샤넬, 프라다 등 최고 명품 브랜드들과 이벤트를 진행하던 곳이다. 4월에는 신세계 강남점과 대구점으로 팝업스토어를 확장했다. 최근에는 인기 프로골퍼 김하늘을 앰배서더로 발탁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아이언 명가’ 미즈노는 한국 여성 골퍼들을 위해 만든 ‘JPX Q’를 내놨다. 미즈노의 베스트셀러 라인업인 JPX에서 이름을 따왔다. 미즈노가 JPX 시리즈의 이름을 따 여성용 클럽을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를 위해 한국지사와 일본 본사가 4년 동안 함께 풀세트를 선호하는 여성 골퍼를 위해 드라이버와 우드, 유틸리티, 아이언까지 풀 라인업으로 구성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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