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월가의 흥분 "Japan is back"

입력 2023-05-29 17:59   수정 2023-05-30 00:16

월가는 한국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1970~1990년대 고성장, 2000년대 마진 확대 등 성공 스토리가 더는 없다는 게 원인이다. 정부의 기업 정책은 불투명하고, 기업은 주주 환원에 소극적이다. 한 헤지펀드 투자자는 갑작스러운 탈원전 정책으로 만성 적자에 빠진 한국전력, 회삿돈으로 사업과 관련 없는 야구단을 사들인 신세계 등을 열거하며 한국 비중을 대폭 줄였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미국 증시가 주춤하면서 작년 말부터 월가에선 해외 투자를 권하는 보고서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을 추천하는 곳은 드물다. 반면 일본은 주목받는 나라다. ‘잃어버린 30년’ 속에 한국보다 더 빨리, 더 오랫동안 잊힌 시장이었지만 워런 버핏이 ‘일본은 미국 외 최대 투자처’라고 밝히면서 최근 가장 ‘핫’한 나라가 됐다.
한국 떠난 버핏, 일본을 사다
닛케이225는 29일 31,000을 넘어섰고 TOPIX지수도 2100을 돌파했다. 1990년 8월 이후 33년 만에 최고치다. 올해 외국인은 일본에서 5조엔(약 47조원)어치를 순매수했다. 둔화하는 미국 유럽 경제와 달리 회복하고 있고, 기업 실적도 개선되고 있다. 일본은행이 완화 정책으로 전환하면 환차익을 누릴 것이란 기대도 있다. 한국이나 대만 같은 지정학적 위험도 크지 않다.

일본 투자가 단기 붐은 아닐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일본 정부의 오랜 기업 지배구조 개선 노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많은 일본 기업은 번 돈을 주주에게 돌려주기보다 깔고 앉아 있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도쿄증권거래소는 지난달 3300여 개 상장기업에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를 밑도는 상장사는 주가 상승 방안을 공시하고 실행해 달라”고 주문했다. 해당 기업은 도요타자동차를 포함해 상장사의 43%에 달한다. 정부 뜻이 아니라면 쉽사리 꺼낼 수 없는 요구였다. 이후 미쓰비시상사, 후지쓰 등이 연이어 자사주 매입을 발표했고, 미쓰비시중공업은 배당 확대 계획을 제시했다.
증시가 살아야 경제가 산다
늘어난 행동주의 펀드 활동도 기업을 일깨우고 있다. 홍콩계 펀드 오아시스매니지먼트가 엘리베이터 업체 후지텍에서 창업자의 아들인 다카카즈 회장을 축출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다카카즈 전 회장이 회사와 불투명한 부동산 거래를 하는 등 지배력을 남용해왔다는 이유였다. 오아시스가 활동을 시작한 지난 1년간 후지텍 주가는 50% 가까이 올랐다.

행동주의 펀드 활동이 활발해진 건 아베 신조 전 정권이 2013년부터 스튜어드십 코드, 지배구조 코드, 사외이사 의무 선임 등을 법제화한 덕분이다. IR재팬에 따르면 일본 내 행동주의 펀드는 2014년 7개에서 2020년 44개로 늘었다.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 행동주의 펀드 활동 증가가 일본 증시의 밸류에이션을 높이고 있다는 얘기다.

버핏은 2003~2007년 포스코, 대구텍 등 한국에 상당액을 투자했고 당시 한국에서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하지만 지금은 투자가 없다. 한국에도 PBR이 1 미만인 기업이 38%에 달한다. 증시가 발전하지 않으면 돈이 기업으로 돌지 않는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이 자사주를 사들여 소각하고 은행도 배당 성향을 높이는 등 변화는 나타나고 있다. 기업이 좀 더 과감한 지배구조 변화나 주주 친화 정책을 펼칠 수 있게 정부가 지원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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