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정부가 경제 제재 조치로 한국에 묶여 있는 이란 원유 결제 대금 70억달러(약 9조3000억원)를 이란에 돌려줄 방침이다. 관련 문제를 적극 해결하려는 한국 정부의 의지와 중동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다시 움직이고 있는 미국 정부 분위기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29일 정부와 외교 소식통 등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 정부는 유엔 분담금 지급, 코로나19 백신 구매 등 공적인 목적으로만 쓴다는 조건으로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에 동결된 이란 자금을 풀어주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의 주도하에 한국에 있는 이란 자금 동결을 해제하는 실무 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경색된 한·이란 관계 정상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이란에서 석유를 수입하면서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에 개설된 이란 중앙은행 명의의 원화 계좌로 대금을 지급해왔다.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로 이란의 달러 계좌가 막힌 탓이다. 그러나 2018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핵협정(JCPOA)을 탈퇴하면서 원화 결제 계좌마저 쓰지 못하게 됐다.
이번 조치를 실행한다고 해도 국내 이란 계좌의 자금을 이란으로 바로 송금하지는 못한다. 대신 인근 중동 국가에 있는 이란 은행 지점으로 자금을 옮기기로 했다. 자금 용도를 모니터링하기 위한 방안으로 풀이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해 “UAE의 적은 이란”이라고 발언한 이후 한국과 이란은 긴장 관계를 이어왔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분위기가 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란은 주요 에너지 생산국이라는 점에서 외교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어왔다.
미국이 이란을 비롯한 중동 국가와의 경제·외교 협력 관계를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도 주목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내년 대선을 위해 중동 내 미국 입지를 키우는 데 노력하고 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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